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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양지와 그늘
2001-12-26

편집장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7일 폐막됐다. 출범 이듬해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란 평가가 나라 밖에서 들여온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 최대의 아시아 영화제’라는 호칭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은 우리들에겐 세계 영화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의 영화전문가들에겐 아시아 영화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독파할 자리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었다. PPP를 통해서 아시아 주요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으니, ‘미래’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부산에서 한국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우리가 뛰어난 가작을 적잖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주최국을 너무 배려한 건 혹시 아닌지 염려됐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한국영화뿐이었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 후일담을 전해듣고 노파심을 조금 덜어냈다. 어쨌든, 이 일은 관객들이 외면한 올해의 저예산 수작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 성 싶다. 또하나, 부산이 한국영화를 밖으로 보여주는 창구노릇을 유효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다. 몇해째 정부는 예산지원은 올해로 그만이라는 절연선언을 거듭해왔는데, 이는 영상산업을 21세기 문화입국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 영화를 경제적 가치로 일괄치환하는 시선으로 보더라도(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지만) 영화제는 장기투자할 만한 부문이다. 누구도 예상못한 빠른 속도로 역할을 증명해버린 부산영화제 앞에서 정부가 그 지원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리라 믿는다. 칸도, 베를린도, 베니스도 그 지원으로 영화제를 이어올 수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한 부산의 구성원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해왔다는 점도 참조할 사항이다. 한국영화인들과 부산시민들이 부산영화제 지킴이 구실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올 부산에서 아름다운 일만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신상옥 감독이 북한 체류시절 만든 <탈출기>가 끝내 일반 관객 앞에 상영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사직당국의 경고를 받고, 영화제 쪽은 고심끝에 언론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제한상영을 해야 했다. 마감을 하러 일찍 서울로 돌아오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없었는데, 최서해의 원작에 지극히 충실했다고 <한겨레> 문화부의 이상수 기자는 말했다. <탈출기>는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극빈의 원인을 제공한 일제와 맞서싸우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편지형식의 단편이다. 이 영화를 이적표현물이라고 판단한 이의 아군은 그렇다면 제국주의 일본인가, 라고 그는 반문했다.

근본적 질문을 접어두고나니 한 독일감독의 이름이 떠올랐다. 1946년 동독에서 최초의 ‘전후영화’를 만든 그는 10년 뒤 서독으로 이주했다. 서독은 동독에서 만든 감독의 영화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주 이듬해 <운터탄>이란 영화가 처음 상영됐다. 서독의 경제기적을 비판한 영화였고, 자막에서 이름을 빼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만든 그의 영화를 동독의 텔레비전이 방영하기도 했다. 볼프강 슈타우테,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 부문에선 84년 타계한 그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 동에서건, 서에서건 통일과 사회정의를 영화의 과제로 삼았던 그의 생애를 걸어. <탈출기> 부산 사건은 아직도 지배적인 우리의 냉전의식을 돌아보게 한다. 두 감독이 분단된 땅을 오간 경위가 비록 다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