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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동남아영화의 중심’을 꿈꾸다

제1회 베트남국제영화제 단상… 아쉽지만 의미있었던 출발

제1회 베트남국제영화제 행사 전경.

지난 10월17일 하노이에서 개막한 제1회 베트남국제영화제가 10월22일 막을 내렸다. 베트남국제영화제는 베트남의 민간 미디어 회사인 베트남미디어의 응유엔 빅헨 부사장의 오랜 집념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녀는 한국의 TV드라마를 수입하여 베트남에 한류 붐을 일으킨 당사자이며, 자국영화의 수출과 합작 등 세계무대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녀가 베트남국제영화제의 창설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5년여부터다. 8500만명의 인구에도 자국영화가 연간 12편여밖에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하던 그녀는 국제영화제의 창설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약 100만달러에 달하는 전체 예산은 대부분 베트남 정부 문화체육관광부가 부담하였고, 영화제의 실질적 운영은 베트남미디어의 스탭들이 주도하였다. 심지어 개·폐막 공연 연출을 빅헨 부사장의 남편이자 감독인 응유엔 판쿠앙빈이 맡기도 하였다(판쿠앙빈의 신작 <떠도는 삶>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초청작이었다).

68편의 영화를 소개한 첫 영화제를 운영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기도 했다. 그 대부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간섭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막작 교체 건이었다. 애초에 <떠도는 삶>이 개막작으로 발표되었으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막식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검열문제가 생겼고, 결국 개막 열흘 전에 개막작이 프랑스 애니메이션 <아서와 두개의 세상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문제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이다. 빅헨 역시 이를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다행히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영화국 국장인 라이 반 신이 영화제의 독립적 운영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칸, 베니스, 베를린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들이 참석하여 나름 의미있는 행사를 만들 수 있었다.

정작 나를 실망시켰던 것은 일부 해외 게스트와 해외 유수의 영화전문 기자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빅헨을 비롯한 베트남국제영화제의 스탭들이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영화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수시로 불평과 잘못된 정보를 쏟아냈다. 심지어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은 모 감독은 폐막식날 시상자를 바꾸라고 영화제쪽에 요구하기도 했다. 때문에 영화제쪽은 시상자로 초청한 홍콩의 장가휘에게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영화제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베트남국제영화제는 ‘동남아영화의 중심’을 영화제의 핵심 화두로 선택하였다. 같은 동남아권의 방콕영화제, 싱가포르영화제, 콸라룸푸르영화제, 자카르타영화제 등이 공통적으로 재정이나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그러한 화두 선택은 훌륭한 선택으로 보인다. 필자와 만난 라이 반 신 집행위원장은 격년제 개최를 고려 중이라고 말해, 나는 그럴 경우 베트남국제영화제는 곧 잊혀질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재정문제와 관료주의 극복, 영화제 개최장소의 변경(2회는 호찌민 근처의 나짱을 고려 중이다. 영화제 개최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등 난제가 쌓여 있지만, 빅헨과 스탭들의 꿈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에는 한국의 영화인들도 동참하기 바란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아시아영화 네트워크 구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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