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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무사, 서부에 오다 <워리어스 웨이>
강병진 2010-12-01

21세기 미국에서 환생한 한국의 이무기만큼이나 서부시대 미국에 상륙한 동양의 무사도 당황스러운 캐릭터다. <워리어스 웨이> 또한 ‘그렇다 치자’고 한다. 다만, <디 워>가 현실세계를 바탕에 두고 비약을 거듭한다면 <워리어스 웨이>는 아예 ‘비약’이란 개념 자체를 지워버린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아주아주 먼 옛날”이다. 인류 최고의 무사이고픈 전사(장동건)는 적을 해치우고 정말 인류 최고의 무사로 등극하지만, 끝내 적의 아기만은 죽이지 못한다. 그는 자신에게 명을 내린 조직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아기와 함께 미국으로 향한다. 배우 장동건을 키워드로 삼는다면 <워리어스 웨이>는 <무극>의 시대와 서부시대를 동시대로 연결시키는 셈이다. 작정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상황에서 ‘비약’이란 단어가 설 곳은 없다.

동양의 무사가 서부에 왔다, 치고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워리어스 웨이>는 그보다 이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홍콩의 무협영화와 할리우드 서부영화의 서사가 ‘은둔고수’라는 설정에서 만나고, 샘 페킨파의 기관총과 사무라이의 칼이 맞서고, 이들이 한데 모인 공간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본 듯한 곳인데, 그들의 주변 인물들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봤을 법한 모습이다. <매트릭스>와 <300>의 이미지를 차용한 액션 또한 <워리어스 웨이>에 담긴 대표적인 레퍼런스다. 취향을 조합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연상되지만, <워리어스 웨이>는 그처럼 작정하고 막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의 취향을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친구를 찾아 서부에 온 전사는 죽은 친구가 남기고 간 세탁소를 운영한다. 부모의 복수를 꿈꾸며 칼쓰기를 연습해온 마을 처녀 린(케이트 보스워스)은 그의 생활을 돕는 한편, 칼쓰기를 배우고, 전사를 흠모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빠른 편집과 끊이지 않는 음악으로 전사가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준 뒤, 전사와 린이 춤을 추듯 대련하는 장면으로 방점을 찍는다. 이제 전사의 검과 서부 사나이들의 총이 맞서야 할 때다. 린의 부모를 죽인 약탈자들이 마을에 쳐들어오고, 전사는 봉인해놓은 칼을 든다. 때마침 전사를 쫓던 조직도 전사의 칼에서 울려퍼진 죽음의 소리를 듣고 마을로 향한다. <워리어스 웨이>는 칼을 들지 않으려던 그가 결국 마을의 평화를 위해 칼을 뽑게 되기까지, 최소한의 이야기와 감정으로 관객의 눈길을 머물게 만들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가 전사가 ‘들고 다니는’ 아기의 표정으로 빈곳을 메운다면 중반부는 린의 복수심이 관객을 이끈다. 영화의 사건을 추동하는 린의 복수심은 전형적이라기보다는 원형에 가깝다. 또한 비극적인 사연을 지녔고, 가장 인간적으로 반응하는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땅에 붙어 있는 캐릭터다. 극중 대사처럼 ‘포커페이스’로 일관하는 전사의 감정까지 케이트 보스워스의 연기를 통해 드러날 정도다. 이 영화가 전사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다는 설명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싸우지 않고, 잠시 도울 뿐이다.

영화 속 서부의 마을은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로드’(Road)라는 텅 빈 지명을 가진 이 마을의 전경은 할리우드가 서부영화를 양산하던 시절, 사막에 세워놓았을 세트를 연상시킨다. 그처럼 영화의 전면에 드러나는 가상의 색깔은 비약적인 설정과 시공을 초월하는 상황, 다양한 레퍼런스의 조합을 용인시키는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워리어스 웨이>가 볼 만하다는 게 장점이 될 수는 없다. 그린 스크린 위해 CG로 그려넣은 배경까지 더해진 이 영화의 비주얼이 관객의 감흥을 돕는 것도 아니다. 이제 와서 영화에 담긴 취향을 독특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이고, 시선을 붙잡는 연출만으로 오락적인 완성도를 평가할 수도 없다. <워리어스 웨이>는 그린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세트에서 이뤄진 하나의 실험으로 보인다. 잡다한 영화적 기질,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 그 모든 걸 껴안는 CG 등 여러 요소들을 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가볍고 톡톡 튀는 농담으로 즐기기에는 사뭇 진지하고, 액션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에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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