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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나리오나 써볼까?
2001-03-08

컴퓨터 게임/ 게임 시나리오

소설과 시나리오는 다르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해도 표현 방법이 달라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소설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영화로 성공할 수 없다. 각색이 새로 쓰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다. 시나리오 중에서도 연극과 영화 시나리오는 다르다.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고 관객과 직접 접촉하며 편집이란 게 없는 연극 극본이 영화 시나리오와 같을 리가 없다. 게임 시나리오는 또 다르다.

기본은 같다. 관객의, 게이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꾼으로의 재능, 그리고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펼쳐낼 수 있는 연출력은 뭘하든 필요하다. 그런데 게임에는 게임적 특수성이 있다. 줄거리를 보고 듣고 느끼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에서 더 중요한 건 게임성이다. 게임은 유희다. 감상이 아니다. 그리고 능동적인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모니터라는 좁은 공간 위에서 펼쳐진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게임 시나리오를 쓸 때 눈꺼풀에 바늘로 새겨둬야 하는 건 ‘놀이’와 ‘이야기’의 유기적 결합이다. 전투나 퍼즐 같은 ‘놀이’가 ‘이야기’의 들러리에 불과한 게임은 지루하다. 반대로 ‘이야기’는 빈곤하고 ‘놀이’만 있다면 쉽게 질려버린다. 그리고 나중에 남는 감동이 없다. 요즘 추세는 ‘이야기’보다는 ‘놀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다. 하지만 역시 이상적인 건 두 가지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재미와 감동을 낳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원론이다.

그리고 게임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라도 게임에 대해 잘 모른다면 좋은 게임 시나리오를 쓸 수 없다. 예를 들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내레이션 같은 건 자주 나오면 곤란하다. 이런 게 자꾸 나오면 대강대강 넘어가게 된다. 이벤트가 한번 일어났다 하면 대화를 보기 위해 마우스를 수십번 눌러야 하는 게임도 문제가 있다. 한 인물의 대화는 가능하면 한 화면에서 처리해주는 게 좋다. 이벤트에서 대화량이 너무 많아도 흐름이 끊긴다. 게임 시나리오에서는 절제와 압축이 중요하다. 화면의 대화창 크기에 딱 들어가는 글자 수가 몇갠지 미리 따져둬야 한다. 대사로 모든 걸 설명하면서도 지나치게 길어서는 안 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제작자가 원하는 순서대로 게이머가 플레이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단선진행 게임이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마을에 갔다고 하자.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순서는 게이머 마음대로다. 한번 말 건 사람한테 또 거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땐 말을 바꿔줘서 이미 대화를 했다는 걸 알려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힘들여 말을 걸었는데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와도 김빠진다. 모든 대화가 정보를, 그것도 되도록이면 재미있게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자유도가 높아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면 더 골치아파진다. 어딜 먼저 가도 논리적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써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시나리오인지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는 건 더 어렵다. 그냥 이야기만으로도 눈물이 글썽거리게 만드는 시나리오가 있는가 하면, 그냥 듣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유치하기까지 한데 막상 해보면 가슴이 아려오는 시나리오가 있다. 확실한 건,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하면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무슨 숙제라도 하는 심정으로 무의미한 진행을 계속 해나가는 게임은 게이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박상우/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