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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위한 귀신들의 소원 들어주기 <헬로우 고스트>
송경원 2010-12-22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역시 차태현이다. 기대 이상이 없는 반면 예상을 벗어나지도 않는다. 이 편안한 인상의 배우는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이 심한 한국영화계에서 ‘잘하고 싶은 것’ 대신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관객이 예상하고 원하는 딱 그만큼을 틀림없이 제공한다. 덕분에 그가 출연한 영화에는 언제나 전작들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관객의 기대를 만족시키며 축적된 그의 변함없는 이미지는 이제 영화를 고르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는 중이다. <헬로우 고스트>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차태현’이란 배우가 축적해놓은 모든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이 영화는 한국 코미디영화의 모범 답안과 공식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로 성장한 상만(차태현)은 죽는 게 소원이다.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끝내고 싶은 그는 약도 먹어보고 물에도 빠져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그의 눈에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골초 아저씨 귀신, 변태 할아버지 귀신, 울보 아줌마 귀신, 식신 초딩 귀신까지 4명의 귀신과 함께하는 괴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그의 몸을 사용하려는 귀신들의 방해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된 상만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성불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 와중에 상만은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연수(강예원)에게 한눈에 반하고 귀신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조금씩 그녀와 가까워진다. 그러나 귀신들과의 생활이 차츰 익숙해질 무렵 영화는 잊고 있었던 충격적인 비밀을 드러내며 반전을 시도한다. <헬로우 고스트>는 명백히 엔딩의 마지막 그 한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다. 언젠가부터 한국 코미디영화는 공식처럼 코미디로 출발해서 멜로와 드라마로 끝을 맺곤 했다. <헬로우 고스트>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문제는 두 가지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초·중반의 코미디와 후반부의 드라마가 거의 다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사실 코미디라는 장르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실패에 가깝다. ‘자살을 위한 귀신들의 소원 들어주기’라는 목표를 세운 뒤 각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 사이를 메워나가는 내러티브는 코미디영화의 효과적인 구조 중 하나였지만, 영화는 마지막 반전에 지나치게 신경 쓴 탓에 이를 웃음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장면들에는 소홀하다. 변태, 골초, 울보, 먹보 등 기껏 구축해놓은 매력적인 귀신 캐릭터와 개별 에피소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까닭에 지루하게 늘어지며, 차태현의 슬랩스틱 표정 연기만으로 이를 메우기엔 아무래도 모자란 감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산만하게 흩어진 듯 보이던 사건들은 퍼즐처럼 맞춰지고 무의미했던 장면들은 큰 그림의 조각이 되어 흠결없는 드라마가 완성된다. 반전의 효과가 강한 만큼 설득력과 감동은 배가 되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반전을 위해 희생되는 것 역시 적지 않다는 점이다. <헬로우 고스트>는 한국 코미디영화의 나쁜 습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갈등을 치유하는 만병통치 가족코드의 남용이나 결말의 매끈한 감동을 위해서라면 중간중간 늘어지는 극적 완성도와 세밀한 아이디어의 부족쯤은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마저 엿보인다. 극단적으로 코미디영화임에도 결말의 감동을 위해 웃음을 포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헬로우 고스트>가 결말을 통해 남기는 울림은 적지 않다. 반대로 말하자면 희생시킨 대가만큼 그 파장은 크고 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배우 차태현은 이러한 감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그리고 설득력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요소다. <헬로우 고스트>가 또 한편의 차태현식 코미디영화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1인5역의 연기 변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닌 일상의 얼굴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배우 차태현의 장점, 단점, 가능성과 한계까지 모두 드러낸다. 데뷔 초부터 한결같았던 이 배우가 전하는 편안함이 지겨워지지 않는 한, 추운 연말 가족 단위로 극장을 찾을 관객에게 <헬로우 고스트>가 취한 감동의 방식은 아마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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