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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계미를 아름다운 결과로 극점으로 밀어붙이는 <트론: 새로운 시작>
김혜리 2010-12-29

<트론>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82년, 당대의 관객은 ‘디즈니가 미쳤나보다’ 생각했다. 동물을 의인화하다 지쳐서 이젠 컴퓨터 프로그램이냐는 농담도 했다. 게다가 그해는 하필 SF 장르의 빈티지가 탁월했다. <E.T.> <블레이드 러너> <매드 맥스2>의 광휘에 가려 <트론>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테크놀로지가 비약한 할리우드에서 28년 만에 냉동인간처럼 다시 깨어난 속편 <트론: 새로운 시작>은, 전편 <트론>이 그랬듯, 멀고 먼 은하계가 아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새로운 <스타워즈>가 되기를 꿈꾼다. 21년 전 실종된 천재 프로그래머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의 아들 샘(가렛 헤드런드)은 이제 아버지가 설립한 엔콤(ENCOM)사의 대주주다. 아버지의 철학을 배신하고 수익만 좇는 엔콤을 거액 기부와 해킹으로 골탕먹이는 일이 그의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신호로 추정되는 호출이 날아오고 샘은 80년대 아케이드 게임기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종된 아버지가 본인이 만든 프로그램 클루의 손에 축출, 유폐됐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요컨대 <트론: 새로운 시작>은 디즈니 특산 <라이온 킹>표- 부모와 강제로 헤어진 자식이 우여곡절 끝에 적통을 잇는- 스토리다. 그런가 하면 창조주를 축출하고 ‘무신론자’가 된 프로그램들의 세계에 신의 독생자가 강림하는 ‘네온 바이블’이기도 하다. 줄거리만 원형적인 게 아니라 <트론: 새로운 시작>의 많은 장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등 기존 SF 대작의 메아리다. 특히 오비완 케노비를 닮은 케빈의 스타일부터 다스 몰의 양날 광선검을 연상시키는 무기, “난 네 아비가 아니다”라는 대사까지 <스타워즈>를 향한 목례는 숨가쁘게 쏟아진다. “왠지 불길한데?”류의 어이없는 독백과 대화라기보다 ‘설명서’에 가까운 대사들은 <트론: 새로운 시작>이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로 발돋움하지 못하게 구속하는 족쇄다. 디지털 배우의 표현력을 놓고 보아도 <트론>은 <아바타>보다 퇴보했다.

이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트론: 새로운 시작>은 멋진 신세계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테크놀로지를 더 번쩍거리고 요란한 효과에 졸부처럼 투자하는 대신, 오리지널 <트론>에서 연역해낸 특정한 시청각적 스타일의 완성에 썼다. 다시 말해, <트론: 새로운 시작>의 성공은 현재 디지털영화의 기술을 얼마나 혁신했느냐가 아니라 현재 기술 수준에 밀착해 효과적으로 사이버 스페이스를 구현한 영리한 발상들에 있다. 혹시 기존 3D영화를 보면서 이것은 입체공간이 아니라 겹겹이 늘어선 투명한 평면의 연쇄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줄곧 암흑 위에 적과 백의 네온라인이 인물과 공간의 윤곽을 그리는 <트론>의 화면이 구현하는 것은 입체감이라기보다 현재 3D 기술에 들어맞는 특별한 평면 감각이다. 이미 <심즈> <세컨 라이프>가 가상현실을 풍부하게 보여준 시대에 <트론: 새로운 시작>은 <아바타>의 정반대 방향에서 첫 영화의 단순한 기계미를 극점으로 밀어붙이며 그 결과는 아름답다. 드라마가 처질 때면 박동을 불어넣고 질주할 때면 속도감을 제고하며, 때때로 명상의 공기마저 조성하는 다프트 펑크의 사운드트랙은 음악이 영화를 어떻게 승천시킬 수 있는지 입증하는 사례다. 더불어 사운드웍스 컬렉션팀이 작업한 음향은 독창적인 사운드스케이프(소리가 그리는 풍경)를 창조한다. 기계음과 인간의 소리 사이의 교묘한 피치, 외계의 소음이 차단된 물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 정교하게 처방된 정적은, 말 그대로 극장 안 공기의 밀도를 바꿔놓는다. 이 영화의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사운드 편집이 상을 받지 못한다면 내년 오스카의 가장 큰 이변일지도 모른다. 오리지널 <트론>이 나온 1982년 이후에 태어난 당신은 사이버 스페이스를 익히 아는 장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론: 새로운 시작>을 보기 전에는, 천만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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