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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아시나요? 김치 웨스턴과 굴라시 웨스턴

서부극에 대한 재조명, 아시아의 변형 서부극도 흥미로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월에 열리는 국제영화제 중 가장 영향력있는 베를린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가 공교롭게도 서부극을 테마의 하나로 정했다. 베를린영화제는 헨리 헤서웨이의 동명 1969년작을 리메이크한 코언 형제의 <진정한 용기>(True Grit)를 개막작으로 정했고, 로테르담영화제는 옛 공산주의 시절 소련과 동구에서 만들어졌던 서부극을 소개하는 특별전 ‘레드 웨스턴’(Red Westerns)을 준비 중이다. ‘레드 웨스턴 특별전’은 초창기 몽타주 이론의 선구자이자 감독이었던 레프 클레쇼프의 무성영화 <볼셰비키 땅에서의 미스터 웨스트의 특별한 모험>(1924) 을 비롯해 동독,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지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을 소개할 예정이다. 사실 동구권 국가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에는 여러 가지 별칭이 있다. 먼저 음식과 관련된 용어. 이탈리아의 서부극을 이탈리아의 대표음식인 스파게티에 빗대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부르듯이, 동구의 서부극은 ‘보르시 서부극’이라 부른다. ‘보르시’(Borch)는 우크라이나 전통음식이지만, 동구권 국가에서도 널리 먹는 대표적인 수프다. 때문에 동구권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동독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은 ‘자우어크라우트 서부극’이라고도 한다.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는 양배추로 만든 독일식 김치이다. 유고슬라비에는 ‘기바니카 웨스턴’이 있었다. ‘기바니카’(Gibanica)는 필로 패스트리와 하얀 치즈로 만드는 유고슬라비아의 전통음식이다. ‘기바니카 웨스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저항하는 파르티잔의 이야기를 다루는 ‘파르티잔영화’의 한 분파이기도 하다. 헝가리의 서부극은 ‘굴라시 서부극’이라 불렸다. ‘굴라시’(Goulash)는 쇠고기, 양파, 고추, 파프리카, 후추 등을 넣어 끓인 일종의 스튜(stew)로 헝가리의 대표음식이다. 지리와 관련해서는 ‘동부극’(Ostern)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부극’은 주로 중앙아시아의 초원이나 옛 소련의 아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한 웨스턴을 일컫는 용어다.

대개 이러한 변형 서부극은 자국의 시대와 정치적 상황을 서부극에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60, 70년대에 유행했던 ‘만주 웨스턴’은 일제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군에 저항하는 독립군의 활약상을 주로 다루고 있다. 레드 웨스턴 중에서는 ‘기바니카 웨스턴’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난 2008년 8월에는 ‘만주 웨스턴’ 작품들을 모아 소개하는 ‘대륙행 티켓을 끊어라, 만주 웨스턴 특별전’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적이 있다. 젊은 관객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최근작으로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미국에서 개봉할 때 <뉴욕타임스>에서 ‘김치 웨스턴’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여타 아시아는? 2007년 11월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에서 ‘아시아의 서부극’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해, 커리 웨스턴(인도), 타갈로그 웨스턴(필리핀), 방글라데시 웨스턴 등을 소개한 바 있다.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다. 타이 웨스턴(위시트 사사나티앙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 찰레름 웡핌의 <다이나마이트 워리어> 등)이나 나베야키 웨스턴(혹은 스키야키 웨스턴, 일본)도 있다. 나베야키 웨스턴의 대표작으로는 미이케 다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와 고바야시 아키라 주연의 <철새>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59년과 61년 사이에 총 8편의 작품이 만들어질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중국영화는 지앙원의 <양자탄비파>, 가오준수의 <서풍열> 등 이른바 ‘차이니즈 웨스턴’의 새로운 서막을 열었다(우리나라에서는 자장면 웨스턴이라 부르고 싶겠지만).

하지만, 이들 아시아의 서부극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한자리에서 소개된 적도 없다. 이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관객과 함께 즐기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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