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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으로 존재한다' <아이 엠 러브>

밀라노 재벌가인 레키가의 안주인 엠마(틸다 스윈튼)는 시아버지의 생일파티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다. 아름답게 성장한 세 자녀와 믿음직한 남편,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시부모, 고풍스러운 가구와 완벽한 인테리어에 먹음직스러운 음식까지 더해지며 완벽한 가족의 초상이 완성된다. 그러나 목걸이와 팔찌를 채워주는 남편 앞에 잠시 멈춰선 엠마를 잡은, 짧은 투숏은 이상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그녀는 과연 그녀 삶의 주인인 것일까? 영화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뒤 관객은 엠마를 보고 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서 현재를 기능적으로 메우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엠마는 영화 중반쯤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와 정사를 나눈 뒤 자신에 관해 처음으로 입을 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랑’ 앞에서 자신이 여성임을 다시 지각하게 되었을 때 완전히 잊어버렸던 과거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다른 미래를 여는 문이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제목인 ‘아이 엠 러브’는 ‘나는 사랑이다’보다는 ‘나는 사랑으로 존재한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엠마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불의의 사고로 난관에 봉착한 그 지점에서 사랑을 포기하는 일반적인 선택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문의 이름이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재벌가 안에서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여성의 자리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제시한다. <틸다 스윈튼: 러브 팩토리>(2002)에서 맺은 인연으로 구아다그니노의 이번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틸다 스윈튼은 자칫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캐릭터를 단단히 현실에 발붙이게 한 일등공신이자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폭풍 같은 열정과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슬픔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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