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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영웅담이 아닌 삶에 대한 찬가 <127시간>
이영진 2011-02-09

Survive! 대니 보일의 인물들은 필사적으로 바둥거린다. 살아남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낙원이라 불리는 섬에서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고(<비치>), 바이러스로 오염된 지역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한다(<28일후…>). 대니 보일은 지금껏 출구없는 큐브를 만드는 데 골몰해왔다. 불가능의 큐브 안에서 탈출이라는 기적이 도대체 가능한가. 기적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니 보일의 인물들은 실험용 쥐가 되어 혹은 신화 속 인물들처럼 이를 증명해야 한다. “우린 아직 살아 있어!” 태양을 구하기 위해 이카루스 2호에 승선한 <선샤인>의 비행사들처럼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만이 희망의 유일한 근거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말의 처지와도 다르지 않다. 지옥 같은 현실이 던진 퀴즈들을 단계별로 제 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대니 보일이 블루 존 캐넌에서 조난을 당한 지 ‘127시간’ 만에 스스로 제 목숨을 구한 아론 랠스턴의 사투를 접하고 이를 영화로 만든 것은 ‘무조건반사’라고 불러도 좋을 결정이다.

주말마다 아론(제임스 프랑코)은 블루 존 캐넌을 찾아 암벽을 탄다. 그의 트래킹 애호는 휴식을 위한 취미라기보다 광적인 집착에 가깝다. 협곡을 산악 자전거로 가로지르다 고꾸라져도 그는 상처를 살피는 대신 디지털카메라부터 꺼내서 히죽거린다. 이 정도 협곡쯤은 눈 감고도 완주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아론은 지도를 들고서도 길을 잃는 관광객들의 가이드를 자처하며 으스댄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캐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 탄성을 지르는 한심한 치들에게 위험천만한 절벽 다이빙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 아론이 크지도 않은 돌덩이에 손이 끼어, 암벽 사이에서 고립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론이 수중에 지닌 건 500ml 물 한통, 캠코더, 낡은 로프, 헤드랜턴 정도다. 아론은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고, 지도에 없는 숨겨진 암벽을 제발로 찾아올 누군가도 없다. 거대한 협곡에서 아론의 살려달라는 외침은 모기 소리만도 못하다. 구조 가능성 0. 아론이 무딘 등산칼을 꺼내 돌을 쪼개기 시작하는 순간, 아론의 목숨도 째깍거리기 시작한다.

어이없는 실수는 희생으로 이어지고, 합리적인 선택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대니 보일의 ‘서바이벌 게임’이 반복하는 스토리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극단적인 선택의 강요 앞에서 누군가는 칼을 들고, 누군가는 함정을 판다. 대니 보일이 관객의 팔뚝에 서스펜스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요란한 카메라 활공, 빠른 이야기 전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27 시간>은 ‘대니 보일’이라는 표식이 분명한 영화다. 하지만 대니 보일은 이번엔 그저 지켜보지만 말고 체험해보라고 제안한다. 말하자면 <127 시간>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주인공이 움직이지 못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의도를 다른 말로 하면 “관객이 들썩이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 것이다. 그 의도는 성공적인 듯 보인다. 마실 것이라곤 누런 오줌밖에 없는 아론이 차 안에 던져놓은 게토레이를 떠올릴 때, 땀에 젖은 아론의 몸 위에서 벌레들이 마음껏 활보할 때, 아론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하루에 딱 몇 십분 동안만 가능한 일광욕을 만끽할 때, 아론의 오감은 관객의 오감이 된다. 아론이 돌에 낀 오른쪽 팔을 기어코 잘라내는 장면을 지켜볼 수 없다면 그건 과도한 묘사 때문은 아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영웅담이 아닌 삶에 대한 찬가다.” 대니 보일의 말이 거짓처럼 들리진 않는다. <127 시간>을 견뎌낸 아론을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그릴 생각이었다면 아론은 중국제 칼을 생일 선물로 사준 엄마를 원망해선 안된다. 쇼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흉내낼 시간에 로프를 한번이라도 더 던지고 낑낑대야 옳다. 아론은 사지의 문턱에서 헐떡거리면서도 캠코더 속 여인네들의 가슴을 보며 자위할 마음을 품기까지 한다. 삭제된 일상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생명을 간신히 부지하는 아론의 갖가지 행동은 ‘누구나 가능한’ 반응이다. <선샤인>의 우주비행사들이 “인류를 위한” 미션을 각오할 때보다 아론의 해프닝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첫머리에는 배움 없는 가난한 소년이 어떻게 백만장자가 됐을까라는 질문이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영화는 “영화니까!”라고 답한다. 반면, <127 시간>의 마지막엔 “실화니까!”라는 대답이 새겨져 있다. 악몽에서 기적을 퍼올릴 수 있을까. 여전히 대니 보일은 ‘Yes!’라고 답하지만 <127 시간>의 ‘Yes!’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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