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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의 가장 미니멀한 방식의 실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이화정 2011-03-02

이별을 앞둔 남녀가 있다. 여자는, 갑자기 출장 배웅을 하러 간 남자에게 변심을 통고한다. 그리고 며칠쯤 지났을 시간, 여자는 집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싼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사건은 이게 전부다. 단란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일도, 아니면 그들이 지난 과거를 회한하는 일도 없다. 남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이 영화의 목적은 다소 명확해 보인다. 이별을 앞둔 그들에게 남은 사랑, 미련이라 치환될 수 있을지 모르는 감정의 찌꺼기들은 과연 어떤 형태일까?

온전히 목적에 다가가기 위해 영화는 외부적 상황을 극도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두 남녀가 전부. 여자의 새 남자친구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에서도 자주 그러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대신 전화 목소리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덕분에 옆집 부부와 고양이의 출현은 실제임에도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느닷없이 느껴진다. 폭우로 인한 바깥의 빗소리를 제외하고 일체의 배경음이 통제된 채 카메라는 느리고 조심스럽고 또 집요하게 둘에게 다가선다. 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단출한 구성을 통해 영화는 멜로영화의 가장 미니멀한 방식의 실험으로 ‘사랑’과 ‘이별’을 정의한다. 구성상으로 분명, 눈여겨볼 만한 점이 충분한 도전이다.

실험의 결과가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두 남녀가 끊임없이 내어놓는 현재의 ‘기호’들을 통해서, 그들이 진짜 파국에 이르게 된 결정적 계기를 유추해내기란 그닥 쉽지 않다. <여자, 정혜>의 ‘정혜’나, <멋진 하루>의 ‘병운’은 불완전하지만 귀기울여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은 캐릭터였다. 마찬가지로 둘의 파국에 누군가가 진심으로 신경 써줄 수 있도록 이들이 좀더 자신의 감정을 오픈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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