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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해후로도 용해되지 않는 역사의 앙금 <굿바이, 평양>
이영진 2011-03-02

“평양 가자!” 죽음 앞에서 회한을 들이마시며 아이처럼 우는, <디어 평양>의 아버지를 기억하는가. 양영희 감독의 <굿바이, 평양>은 <디어 평양>의 속편 격인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후’를 다루지 않는다. <굿바이, 평양>은 이를테면 되씹기고 곱씹기다. <디어 평양>은 30년 전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는 딸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반면, <굿바이, 평양>은 가족의 눈물겨운 해후로도 용해되지 않는 역사의 앙금을 확인한다. 그리고 전작에서 감추거나 누락시킨 현실을 하나씩 고백한다.

카메라의 의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감독의 조카이자 평양에서 나고 자란 선화다. 일본의 할머니가 보내준 분홍색 우산을 들고 ‘끼약’ 하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던 꼬맹이는 더이상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피우지 않는다. 선화의 쑥스러움은 사춘기 소녀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선화는 고모에게 카메라를 끄면 속말을 들려주겠다고 손짓한다. <디어 평양>의 주요 공간은 집이다. 오사카의 집에서, 평양의 집에서 가족들은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웃고 즐겼다. <굿바이 평양>에선 평양의 거리가 등장한다. 길 위에서 가족들은 침묵한다. 과거를 선택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걷는다. 과거를 털어놓지 못한 아들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과거를 송두리째 지우고 싶은 아버지는 얼마 뒤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선화는 가족의 미래지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지 못한다. 대학생이 된 선화의 편지를 받고, 양영희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또 하나의 나, 선화’를 떠올리며 쓰린 과거를 떠올리는 것뿐이다. 애끓는 그들의 서신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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