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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도상 파괴의 역설(2): 유기체를 담은 무기체

후세인 동상이 미군 점거로 철거되는 사진

희귀한 구시대 문화유산을 일소하는 야만주의는 도상 파괴(<씨네21> 791호)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도상 파괴의 최고 경지는 지도자급 실존 인물의 현대적 입상 파괴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인물 동상의 제작 배후로 단일 권력자를 여러 무기체 복사본으로 연장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본디 전체주의 사회일수록 국가 수장의 입상 복수 개를 공공조형물이란 명분으로 도심 속에 뿌리는 법. 광장과 거리에 둥지 튼 우상 복제물은 결국 공동체 구성원을 내려보고 감시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상징성의 제거는 적군에 막대한 반사이익을 떠안긴다. 전쟁과 내분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마다 예외없이 그 지역 권력자의 동상이 실추되고 초상화가 벽에서 치워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근자에는 무바라크가 실각한 뒤, 이집트 카이로 내각 청사에서 그의 대형 초상화가 공무원들에 의해 들려 나오는 장면이 외신으로 보도되었다.

지도자의 좌천과 함께 아우라의 김이 쏙 빠져나온 그를 빼닮은 조상들은 그저 큰 ‘공란’이 되고 만다. 물리적 위치는 차지하되 의미가 사라진 조각상. 타불라라사(빈 여백)로 변신한 실각한 인물의 도상에 반군과 예술가가 가세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를 기입한다. 중장비에 의해 좌대에서 끌어내려온 후세인 동상, 청사 벽면에서 떼어낸 무바라크 초상화의 모습을 전송하는 외신의 화면, 4·19 혁명 뒤 남산에서 철거된 이승만의 초라한 동상 따위는 본래 그것들이 있던 자리에서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공산주의 철권이 막내린 동구권에서 황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혁명가의 입상들도 똑같은 비평 대상의 처지가 되었다.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는 동베를린 광장에 서 있던 레닌 입상 위로 초대형 프로젝션 영상을 투사했다. 중후한 잿빛으로 둘러싸인 좌파 지도자의 입상 위로 쇼핑 카트를 끄는 무력한 소비자가 겹쳐 나타났다(줄무늬 상의 차림 때문에 자칫 수감자로 보일 법하다). 레닌의 정치 철학이 무장해제된 채 결국 시장경제에 예속된 동구권 현실을 빗대는 듯했다(풍자 대상이 된 동베를린 레닌 입상은 결국 1992년 철거 수순을 밟았다).

2차대전의 패전과 독재를 향한 국민적 원성을 피해 국외로 달아나던 이탈리아 파시스트 두체 무솔리니는 파르티잔 대원에게 붙들려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들겨 맞아 사망했다. 이미 죽은 시체였지만 무솔리니는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 총질과 돌팔매질을 당했다. 생전 이 독재자가 자기 동상이라도 세웠더라면 민중의 분노 일부는 동상에게 전이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