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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바라보는 장진 감독의 하얗고 순수한 시선 <로맨틱 헤븐>
신두영 2011-03-23

애초부터 신은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 오로지 천국만 있다. 장진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로맨틱 헤븐>의 전제는 성경에 나와 있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 관습적으로 믿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지옥의 뜨거운 불구덩이가 없으니 영화는 (역시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의 색깔처럼 하얗고 순수하기만 하다. 그래서 장진 감독은<로맨틱 헤븐>을 “착한 판타지영화”라고 일컫는다.

<로맨틱 헤븐>은 천국에 가게 되는 즉,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이 겪는 세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나열하고 하나로 봉합하는 앙상블 영화다. ‘1. 엄마’에 등장하는 최미미(김지원)의 사연은 이렇다. 암투병 중인 미미의 엄마는 골수이식이 절실하다. 엄마와 골수가 일치하는 기증자를 겨우 찾아냈는데 그는 살인혐의를 받고 도주 중이다. 이때부터 미미는 형사들과 함께 잠복하고 경찰서에 상주하며 골수기증자를 찾아나선다. ‘2. 아내’는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긴 변호사 민규(김수로)의 이야기다. 아내의 일기장이 담긴 가방을 잃어버리고 허탈한 민규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검사 시절 자신에게 잡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그 남자는 칼을 들고 복수를 다짐한다. ‘3. 소녀’의 택시기사 동지욱(김동욱)은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첫사랑을 우연히 택시에 태우게 된다. 둘은 교통사고를 당해 함께 천국에 가고 친구가 된다. ‘4. 로맨틱 헤븐’은 앞에서 늘어놓은 이야기의 조각들을 끌어모아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아름다운 로맨스를 연출한다. 이때 하느님(이순재)이 등장해서 로맨스의 완성을 돕는다.

장진 감독은 <로맨틱 헤븐>을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진식 소동극으로 만들었다.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은 병원의 침대 밑, (장진 감독이 애용하는 공간인) 경찰서, 천국 등에서 알게 모르게 마주친다. 잠복근무, 복수극,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소동의 귀결은 죽음이다. 전작 <퀴즈왕>에 비해 소동극의 규모를 소박하게 줄인 것은 다소 산만하게 늘어놓은 각 인물의 감정을 후반부에 하나로 봉합할 때 효과적이다. 감독 특유의 상황극 유머 역시 몇몇 장면에서 꽤 유쾌하게 기능한다. 다만 누군가의 죽음을 그려내는 이 소동극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로맨틱 헤븐>은 슬픔의 무게를 덜어낸 가벼운 위안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위안은 한없이 착하고 달콤한 멜로드라마를 통해 발현되기에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천국과 지옥의 스테레오 타입을 뒤엎었지만 그곳에는 또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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