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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대관절 왜, 어떤 사명감으로?
김혜리 2011-04-22

<안티크라이스트>의 ‘그녀’(She)는 풀밭의 초록으로 스며든다. 트럭 짐칸에 실려 나무 궤짝의 갈색 속으로 잠겨 들어가던 <도그빌>의 그레이스처럼 사라지고 싶어 한다.

※<황당한 외계인: 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월1일

만우절에 썩 어울리는 영화를 휘파람 불며 보러 갔다. <황당한 외계인: 폴>(이하 <폴>)의 폴은 지구 전입 어언 60년차로 유민 생활도 관록이 붙어 반바지에 배낭 메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외계인이다. 그가 보유한 초능력은 ET의 그것과 어슷비슷하다(영화는 폴이 1981년 무렵 스필버그 감독의 시나리오 자문으로 일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인 그레이엄(닉 프로스트)과 클라이브(사이먼 페그)는 코믹콘(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SF박람회 겸 오타쿠 부흥회)에 온 김에 미국 중서부의 외계인 유적지 순례에 나섰다가 폴과 근접조우한다. 흥미로운 점은, 무려 직업이 SF작가인 두 사람이 외계인을 만났는데도 그닥 환호작약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당혹스러워하며 심지어 좀 떨떠름해 보이기까지 한다. SF 오컬트 장르의 팬덤에 서른줄이 넘도록 군내나게 머문 이 남자들은 어쩌면 “우리는 우리끼리 꾸민 세계에서 잘 놀아왔는데…”라는 투로, 느닷없는 실제 외계인의 출현을 성가신 훼방으로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우주에서 온 친구를 만나 진짜 인생의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 <E.T.>의 엘리엇이 현실의 소년이라면 자라서도 외계인 분장을 하고 코믹콘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장르 마니아들을 향해 “난 너희들의, 너희들을 위한 영화야!”라고 시종 외치고 있지만, <폴>은 21세기 SF판타지 팬들을 휘어잡을 만큼 패러디가 기발하지도 코미디가 참신하지도 않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는 프라모델 조립하느라 지구 정복을 등한시하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까지 알고 있다. 덧붙이는 불평. 막판 카메오 출연하는 시고니 위버는 <에이리언>의 기념비적 아우라를 너무 잦은 패러디로 염가처분하고 있는 인상이다.

4월2일

봄옷 사러 나갔다 양말만 사들고 돌아왔다. <폴>에서 독실한 기독교도 루스(커스틴 위그)는 예수가 진화론자 다윈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그림이 가슴팍에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계절>의 알코올 중독자 켄이 입은 ‘생각은 덜, 술은 더’(Less Thinking More Drinking)의 구호가 프린트된 티셔츠, 그리고 (아마도) <클로버필드>의 파티장면에 언뜻 스쳐가는 ‘엿 먹어라 요가’(Fuck Yoga) 상의와 더불어 내가 본 영화 속 3대 티셔츠 도안으로 꼽을 만하다.

하나둘 날아드는 여름영화 예고편에 관한 메모. 1) <개구쟁이 스머프>: 대관절 왜, 어떤 사명감으로, 우리는 아늑한 2D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 이 작은 이웃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못하고 번잡한 3차원 맨해튼으로 끌어내 수시로 피부색을 언급당하는 ‘괴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영화를 보기까지는 그 뜻을 헤아릴 엄두도 안 난다. 2)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가만, 이 영화가 언제부터 이렇게 잭 스패로우(조니 뎁) 선장의 1인극이 됐지? 출범 당시에는 분명 앙상블 드라마였던 것 같은데. 복습, 복습이 필요해! 3)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 비키니 여인의 숏과 자동차 충돌 숏의 교차편집만으로 이루어진 순수의 결정체.

4월3일

케이블 채널에서 <엑스맨: 울버린>을 보다. 영웅은 악당을 위해 존재하고, 악당은 영웅의 핑계로만 존재한다면 그건 허약한 영화의 징후로 여겨도 좋다. 부모는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고, 자식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현상만큼 현실 세계에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지루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더. 시리즈물 가운데 흥미로운 인물 하나를 집어내 뒷이야기를 펼치는 스핀오프 기획은 안전해 보이지만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 허술하게 만들어져 인물에 깊이를 부여하긴커녕 “고작 그거였어? 차라리 말하질 말지”라는 반응을 부를 경우, 모호한 대로 매력적이었던 캐릭터의 미스터리를 말살해 본편 프랜차이즈의 보유 자산까지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4일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윌 스미스 부자와 신작을 찍는다는 뉴스를 읽고 흥뚱항뚱 웹을 돌아다니다 <타임>의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가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에 출연할 기회를 놓친 배우들을 가리켜 (의역하자면) 부두에 지각 도착해 타이타닉호에 승선하지 못한 운 좋은 승객에 비유한 독한 문장을 읽다. 그런가 하면 한 네티즌은 문제의 차기작 소식에 “나라면 샤말란에게 화장실 디렉션도 안내받지 않을 텐데”라는 참견을 날렸다. 영화감독이 타 장르 예술가에 비해 오래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침 뉴스쇼의 PD가 주인공인 <굿모닝 에브리원>은 로맨틱코미디다. 단, 주인공의 연애 상대가 남자가 아니라 직업일 따름이다. 한데 이 로맨스는 알맹이가 비어 있어 특이하다. 베키(레이첼 맥애덤스)는 성공하기를 열망하고 그만한 자격이 있을 만큼 성실하지만, 무엇을- 어떤 방송을- 추구하며, 어떤 방식의 성공을 바라는지의 문제는 괄호로 남아 있다. 그녀는 그냥 성공을 원한다. 이 점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80년대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와의 결정적 차이다. 물론 <브로드캐스트 뉴스>는 경성 뉴스와 연성 뉴스가 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산물이었고 <굿모닝 에브리원>은 후자가 이미 승리한 시대의 이야기이므로 자연스러운 결과다. 순응을 그린다고 나쁜 영화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만 거기엔 미량의 아이러니가 들어 있어야 재미있다.

<의혹>과 <도망자>의 해리슨 포드 연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그는 인디아나 존스이며 한 솔로이고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다. 즉, 한 사람이 영화사에 남길 수 있는 몫의 공헌을 진즉 마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나는 포드가 정말 훌륭한 배우일까 불경한 의심을 남몰래 품곤 한다. <굿모닝 에브리원>에서 베테랑 앵커맨으로 분한 그는 하나의 표정으로 일관하는데 그 단조로움이 스티븐 시걸 못지않다.

4월5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크라이스트>를 보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치른 기분이다. 권력을 가진 교정자와 종속된 환자, 가해자와 희생자의 자리를 서서히 바꿔치기하며 점증법으로 고통의 카니발을 벌이는 주인공 부부(샬롯 갱스부르와 윌렘 데포)는, 자해하는 감독의 두 분신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둘로 나누어야만 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영화가 최초 공개된 2009년 칸영화제에서 살인범 심문하듯 달려들었다는 기자들도, 모두 다 착한 관객이다.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대로 반응하고 있으니까. 그는 소음을 내지 않는 영화,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영화를 경멸하는 작가다. 언젠가 그는 다른 점잖은 감독들에게 일갈했다. “자기 작품이랑 결혼이라도 할 셈인가?” <안티크라이스트>의 시사회에 다녀왔다고 하니, 한 트위터 팔로워는 이 영화를 보고 애인과 언쟁하다 위경련으로 바닥을 굴렀던 기억을 전해왔고, 부산의 한 팔로워는 <킹덤> 심야상영 뒤 귀갓길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고 놀란 나머지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 추억을 들려주었다.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라스 폰 트리에 영화에 얽힌 미담 하나는 있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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