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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나랑 쓰마부키는 이 영화에 목숨 걸었지
김용언 사진 오계옥 2011-06-07

<악인>의 이상일 감독

신작 <악인>에서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삶이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순간을 포착할 때, 이상일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인물과 공간의 결을 다듬는 그의 손길은 섬세한 연민으로 가득했다. 원작자 요시다 슈이치가 “캐릭터를 가장 소중하게 잘 다뤄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를 추천했던 것은 정확한 눈썰미였던 셈이다. 올해 초 34회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우수주연상 남녀 부문과 우수조연상 남녀 부문을 비롯해 편집상, 음악상까지 휩쓴 화제작 <악인>의 이상일 감독을 만났다.

-소설 <악인>을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심플하게 마음을 사로잡혔다. 문자인데도, 등장인물의 소리나 울부짖는 느낌, 숨결이 체험되는 느낌을 받았다.

-원작과 크게 달라진 장면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유이치(쓰마부키 사토시)와 미츠요(후카쓰 에리)가 처음 만나 호텔로 가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는 한두 장면으로만 소개하더라도 관객이 그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방금 얘기한 호텔장면에서도, 난 유이치보다는 미츠요에 집중했다. 유이치가 미츠요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얼만큼 매력적이었을까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미츠요의 내면의 욕구가 무엇이었는지, 이 사람의 본질이 어떤 거였는지를 좀더 짧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유이치라는 인물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쓰마부키 사토시에게 이런 말을 했다. “유이치는 대사도 별로 없고 설명해주는 다른 요소도 없다. 당신이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당신의 표정과 눈빛, 시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눈속에 비치는 무언가가 유이치를 결정한다. 유이치가 결정되는 순간 영화도 결정된다.”

-배우로선 엄청나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웃음)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땠을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유이치의 얼굴이 아주 밝고 아름답게, 전면으로 드러난다. 그러면서 이 인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최고조에 달한다. =각본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영화의 시작과 끝은 유이치의 얼굴이다’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보이는 유이치의 얼굴과 마지막에 보이는 유이치의 얼굴, 그것이 관객에게 얼마만큼 다르게 보일지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다.

-<69 식스티 나인> 이후 쓰마부키 사토시와 5년 만에 작업한다. 그 사이 이 배우가 어떤 식으로 변화했을지 궁금하다. =일단 참을성이 많아졌다. (웃음) 배우 생활을 지속하면서 ‘나한테 특별한 개성이 있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는 위기감도 있었고. <악인> 촬영 초반, 같이 불고기를 먹으면서 “만일 <악인>이 실패하면 넌 다시 부활할 수 없다. 네가 잘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그랬더니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선 쓰마부키도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훌라걸스>가 대히트작이긴 했지만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번 영화가 망하면 감독님도 큰일이다”라고 응수하더라. (일동 폭소)

-규슈 지역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인가. =70, 80% 찍고 나머지는 간토 지역에서 촬영했다.

-외딴 지역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런 살인사건이라는 소재가 규슈 지역 외딴 마을의 공기와 맞물리며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실제로 그 공간은 어떤 느낌인가. =새와 노인밖에 없는 곳 같았다. 해안지역이다 보니 생선을 좇아 새들이 많이 따라온다. 도시와는 외따로 떨어진 구석의 삶이라는 게 사실 도시에서만 산 사람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 모두, <악인>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대사를 ‘조연’인 요시노 아버지(에모토 아키라)의 입을 통해 매우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너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냐”라는 그 대사 말인가? 그런 메시지를 대사로 옮긴다는 게 두렵고 부담스러운 부분인 건 사실이다. 난 왜 넣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마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에서 <악인>이 개봉할 때 포스터의 메인 카피는 ‘누가 악인인가?’였다. 사실 그런 영화는 아닌데. (웃음) 인간 모두에게 선악의 양면성이 있다는 걸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스트레이트하게 대사로 옮겨도 될까 망설이긴 했지만 그냥 가보자 하며 질러버렸다.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 때마다 그런 비슷한 국면에 마주쳤다. 나의 개인적인 천성이 분명히 있는데, 영화에선 거기서 멈추지 말고 무리를 해서라도 뛰어넘어보자,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하게 된다. <악인>에선 방금 말한 요시노 아버지의 독백, 그리고 그가 빗속에서 죽은 딸과 만나는 장면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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