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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리이야기
2002-01-08

시사실/ 마리 이야기

■ Story

회사원 남우는 눈 내리는 겨울날, 고향 친구 준호의 연락을 받는다. 남우는 준호와 재회하고,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남우는 그 자리에서 준호와 함께한 고향 바닷가 마을, 유년기의 추억에 잠긴다. 남우는 어부였던 아버지를 바다에 잃고, 할머니,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남우의 벗은 활달한 성격의 준호와 떠돌이 고양이 요. 맘 좋은 이웃집 아저씨가 어머니에게 연정을 품기 시작하고, 유일한 친구인 준호네가 서울로 이사가기로 하면서, 남우의 외로움은 깊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신비로운 구슬을 손에 넣은 남우는 등대 속에서 환상의 세계를 만난다. 환상 속의 소녀 마리는 그렇게 남우 곁에 다가와 묘한 설렘을 심어놓는다.

■ Review <혜화동>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내 친구 나를 반겨 달려 오는데, 하던 대목이 유난히 짠하게 가슴에 맺히던 노래. <마리이야기>는 <혜화동>의 그 노래말과 선율을 닮았다. 팍팍한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어른들도 가끔은 유년의 기억에 기대어 쉬고 싶어진다. 왜 모두 내 곁을 떠나는 걸까, 하는 푸념도 잦아진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 <마리이야기>는 그렇게 상실감으로 서걱거리는 가슴팍에 따뜻한 위무가 되는 영화다.

만듦새를 접어두고라도, <마리이야기>는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큰 획을 하나 그었다. 로봇과 괴물, 미소년과 미소녀, 요정과 유령이 등장하는, 아동 취향의 SF가 주류였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흐름 속에서 <마리이야기>는 그 시도부터가 돋보인다. 일상과 환상이 교차하는, 아이와 어른을 아우르는 애니메이션. ‘성인용’을 지향했던 <블루 시걸>의 요란스러움과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마리이야기>는 ‘어른들의 동화’로 손색이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벤치마킹한 듯한 이 작품은, 한때 또다른 세계, 또다른 생명체와 조우했던 아이가 어른이 된 뒤의 ‘후일담’을 앞뒤로 덧붙여, 사라져가는 모든 것에 띄우는 연서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곳 그 시간 그 사람에게 머물고 싶었지만, 그 기억도 작은 점이 돼버렸다. 문득 그 기억의 점이 일으키는 아련함에 감전되듯 멍해질 때가 있다”는 이성강 감독의 말.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다는 <마리이야기>가 길고 묵직한 여운으로 남는다면, 그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이성강 감독은 단편 <덤불 속의 재> <연인> 등에서 반복해 보여주던 ‘나는 누굴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상념의 이미지들, ‘나’에서 비롯된 환상과 꿈을 다시 이야기한다. 달라진 건, 전작들이 관념적이었던 데 반해, <마리이야기>는 구체적인 일상의 무대를 빌리고 있다는 점. 일상은 환상세계로 진입하는 비밀 통로의 구실을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일상은 환상을 통해 윤기를 얻고, 때로 현실과 환상의 만남은 기적을 부른다. 환상으로 침잠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판타지의 미덕.

<마리이야기>는 구상을 시작하던 98년을 포함한다면, 무려 4년을 숙성시킨 프로젝트다. 35명의 애니메이터가 꼬박 2년을 매달려 낳은 결과물은 가히 기술력과 뚝심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이들은 공간감과 온기를 살리기 위해, 3D로 구조를 잡은 배경을 일일이 2D로 리터치하고, 그 위에 캐릭터와 특수효과를 합성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수채화와 유화를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채도, 은은한 파스텔톤의 색감은 환상과 현실 묘사에 모두 어울린다. 신비로운 소녀 마리와 그녀의 수호견 몽이 사는 아름다운 숲과 바다와 하늘은 몽환적이며, 도심 상공을 가로지르는 갈매기의 유려한 동선, 잠 못 들던 밤에 창문으로 스며들던 달빛, 바다 한복판에서 만난 무시무시한 폭풍우, 국민학교 세대(초등학교가 아니라)의 오종종한 추억들은 실사보다 리얼해서 왠지 애잔하기까지 하다.

<마리이야기>는 완벽하진 않다. 현실과 환상의 괴리가 큰데, 두 세계 사이의 넘나듦이 거칠고, 캐릭터와 스토리는 밋밋한데, 주제에 대한 강박이 앞선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도 역대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찬사에 흠집을 내진 못한다. 눈과 귀에 척척 감기는, 게다가 가슴으로 반응할 수 있는 토종 애니메이션을 만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실사 vs 애니메이션

일상이 환상을 돕다

<마리이야기>는 사실상 실사영화와 몇몇 공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와 배경, 특히 일상부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시도였다. 우선 인물 캐릭터는 대대적인 캐스팅 결과, 주연은 물론 단역까지 실제 인물을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가깝게는 애니메이터를, 멀게는 현역 연극배우들을 동원했고, 그들의 프로필 등을 캠코더로 촬영,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배경 역시 스탭들의 헌팅으로 골라낸 것인데, 항구과 바닷가는 경주의 감포 해변에서, 마을 풍경은 백련사 근처 주택가에서 따온 것이다. 등대는 마리를 만나는 환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을 찾아 해외의 등대 중에서 골라야 했다고. 음향효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탭들은 사운드 콘티에 따라, 녹음실 소스가 아닌 자연음을 새로 채취했다. 선녹음과 후녹음을 결합한 더빙 방식도 이채롭다. 자연스러운 입모양과 표정을 뽑아내기 위해 실사 촬영과 선녹음을 진행하고, 그 소스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뒤, 목소리 캐스팅을 다시 해 녹음을 완료한 것. 성인 남우 역에 이병헌, 친구 준호 역에 공형진, 남우 엄마 역에 배종옥, 남우 엄마를 좋아하는 이웃집 아저씨 역에 안성기, 남우 할머니 역에 나문희 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목소리를 빌려줬다.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음악감독으로 합류했고, 유희열과 성시경이 주제가를 불러, 작품에 생기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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