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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튀김 그릴 때가 가장 즐겁죠
신두영 2011-07-26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참석한 <심야식당>의 작가 아베 야로

‘어제의 카레’라는 기묘한 이름의 음식이 있다. ‘어제의 카레’는 만든 지 하루가 지난 차가운 카레를 따뜻한 밥에 얹어 먹는, 사실은 특별할 것 없는 일본식 카레라이스다. 이 음식이 한국에서 유명해진 건 <심야식당>이라는 만화 때문이다. <심야식당>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심야식당에서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들을 묶어낸 아베 야로의 만화다. 만화의 유일한 배경인 심야식당은 신주쿠 뒷골목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조직폭력배, 게이, 호스티스, 스트리퍼 등 다양한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의 메뉴는 된장국정식 딱 한 가지지만 눈자위에 흉터 자국이 선명한 마스터(식당 주인 겸 요리사)는 손님들이 원하는 각종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저마다의 추억이 깃든 일본식 가정식을 먹는 손님들은 고즈넉한 식당의 분위기에 이끌려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독자는 군침을 삼키며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독자의 눈물샘과 침샘을 동시에 자극하는 아베 야로 작가는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그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심야식당> 단행본 끝에 붙는 짧은 부록인 ‘입가심’ 페이지에 실린 만화 속 작가의 모습과 꼭 닮았다. 심지어 모자까지 똑같다.

-한국에 와서 맛있는 음식은 먹었는지 궁금하다. =어제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웃음) (아베 야로 작가가 먹은 음식은 신선로였다.)

-늦은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만화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진짜 만화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대학을 마치고 일단 취직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이 일이 나한테 안 맞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래서 30살까지는 만화가가 돼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안됐다. 그러면 35살까지는 꼭 만화가가 되자고 했는데 역시 안됐다. 그렇게 계속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40살에야 만화가가 됐다.

-심야식당이라는 컨셉이 독창적이고 재밌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전작인 데뷔작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가 별로 안 팔렸다. (웃음) 그때 편집자가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를 해보라고 추천했다. 그리고 지인에게 실제로 밤 12시에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그런 식당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음식 소재의 만화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심야식당>의 에피소드에는 조직폭력배나 호스티스, 호스트, 게이 등의 사연이 나온다. 어떻게 이런 에피소드를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심야식당>의 배경이 되는 도쿄 신주쿠는 밤문화가 발달한 유흥가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그 시간에 식당을 찾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평범한 회사원도 많이 나온다. 각 에피소드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를 쓰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를 그대로 쓰지 않고 조금씩 변형해서 만화로 만든다.

-음식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얻는지 알고 싶다.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하나. =직접 요리를 해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식당에 가서 요리를 부탁하고 사진을 찍는다. 요리책이나 인터넷에서 검색한 음식 사진을 그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조금씩 다르게 그린다. 광고 일을 해봐서 똑같이 그리면 문제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웃음)

-<심야식당>은 성인 독자가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데뷔가 늦었기 때문에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어렸을 때부터 소년 만화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만화가가 되고 <심야식당>을 시작할 때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그리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없더라. 그래서 직접 그리게 됐다. (웃음) 일본에서 <심야식당>을 <빅쿠코믹오리지나루>(Big Comic Original)라는 잡지에 연재한다. 그 잡지의 대상 연령대가 40~50대다. 내가 그리고 싶은 만화와 잡지의 성격이 딱 들어맞는다.

-만화에 직접 등장해서 마스터에게 면 요리는 그리기 힘드니 되도록 주문을 받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만화 본편은 아니고 단행본 뒤편에 있는 ‘입가심’ 페이지에 잠깐씩 등장한다. 일종의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그리고 있다.

-만화에서는 모자를 쓴 모습인데 오늘은 모자를 안 썼다. =(소파 뒤에 있던 만화 속의 그 모자를 꺼내 쓰며) 원래 쓰고 있었다. (웃음) 지금은 더워서 잠시 벗어뒀다.

-지금까지 만화에 나온 음식 중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어떤 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특별히 그리고 싶은 것들은 있다. 고로케(크로켓)나 햄가스 같은 튀김류를 그리기 좋아하는데 특히 튀김옷에 붙은 빵가루는 그리고 싶어 어쩔 줄 모를 정도 좋아한다. 물론 귀찮긴 하지만. (웃음)

-일본 내에서도 인터뷰할 때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좀더 잘생기고 멋있으면 사진을 찍었을 거다.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 사진을 안 찍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심야식당>에서 손님들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반면 마스터의 과거는 아무도 모른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생각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생각해놓은 것이 없다. 정말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때는 마스터의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심야식당>의 결말이 혹시 마스터의 사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좋은 생각이다. 참고하겠다. (웃음)

그림제공:아베 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