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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감정의 호객술

예능프로그램의 필수요소, 리액션을 생각해보니

장신 개그우먼 장도연이 발레리나 연습복을 입고 긴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더니 급기야 바닥에 드러누워 개구리처럼 다리를 죽죽 뻗으며 굼실댄다.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문을 여는 코너 ‘슈퍼스타 KBS'의 새 출연팀인 ‘가수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한 장면이다. 평소 장도연의 장신을 이용한 사지개그를 보고 뒤집어지던 내가 보기에도 이번엔 뭔가 허술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주위를 돌며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발레리나’는 연습복 빼곤 전혀 발레리나와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타이츠 위로 치마가 말려올라가고 그 와중에 사회자의 발치에 머리를 부딪힌 장도연이 작게 비명을 지르고, 사회자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장도연을 일으킨다. 뭔가 참 지리멸렬하다 싶은 감상에 젖어 있는데 현장 관객석의 리액션 장면들은 박수를 치고 응원하는 분위기네?

물론 웃을 준비를 하고 현장에 가서 눈앞에서 기예를 펼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관객과 방구석에서 일요일이 다 가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시청자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개그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의 관객 리액션 장면들에 생각이 가닿았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개그를 견인하고 설득하거나 안전장치가 필요할 때도 관객석의 반응화면은 전략적으로 사용된다. ‘갈월동의 신보라씨’가 반짝이는 의상에 엉덩이를 크게 부풀린 분장을 하고 나와 엉덩이를 부르르 흔들면서 ‘엉덩일 흔들어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웃음 리액션이 여성 관객으로 선택되고 장도연의 드러눕는 사지개그 때도 리액션은 여성 관객이다. 동성, 혹은 같은 집단의 긍정적인 반응 화면으로 상황을 용인하게 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알다시피 <개콘>은 미녀 관객을 자주 노출하는 전통이 있다. 조연출로 <개콘>의 탄생을 함께했으며 최근 복귀해 <개콘>을 책임지게 된 서수민 PD의 프로그램 제작기 한 대목을 보면 관객석의 웃음 리액션은 그저 미녀 노출에만 힘쓰는 게 아니라 무척 전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발레리NO’라는 코너가 나갈 때 웃음 리액션은 모두 남자로 편집할 것. ‘시선’의 문제였다. 젊은 여자 시청자가 부끄러워하며, 웃는 것보단 남자들이 대놓고 웃는 모습을 붙여주는 게 훨씬 건전해 보일 것 같았다.”(PD 협회보)

하지만 액션이 허술할 때, 리액션은 변명처럼 느껴진다. 해서, 여기 말 안 듣는 시청자 1인은 연습복을 제외하곤 발레와의 연관성도 찾을 수 없고 바닥에서 사지만 허우적대는 민망한 장면에 ‘해맑게 웃는 미녀’ 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의 리액션을 찾는 데 골몰하고야 만다. 이를테면 <코리아 갓 탤런트>의 장진이 삐익- 하고 X표를 누른다거나… 흠.

사실, 리액션의 오남용의 현장은 따로 있다. 토너먼트식으로 진행해 우승 가족에게 집을 장만해준다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집드림’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무주택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그들의 기대에 찬 표정들과 안타까운 탄식, 감정을 추스르는 굳은 얼굴로 채워진다. 그 감정들의 출발점은 집 장만의 과정이 정상이 아니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있다. 저 생생한 반응 화면들이 수식하는 것들이 네덜란드 건축가의 창고에 장작이 들었는지 파라솔이 들었는지, 그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뱀인지 거북이인지를 맞히는 순간의 희비여서는 곤란하지 않나? 누굴 대상으로 어떤 감정을 팔아치우는지 리액션 장면에 윤리를 물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장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