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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명성을 찍다

애니 레보비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공식 초상, 2007.

명사들의 초상 사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른 지지를 받아왔다. 그것이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될 때면 정중한 관객의 얼굴로 작품을 관람하고 알현할 태도를 취하는 자가 대중이다. 극성맞은 파파라치들이 국적 불문하고 군웅할거하는 이유는 명사의 사진을 광범위하게 수요하려는 시대상의 반영이다. 유명인의 이목구비를 2차원 평면 위로 고상하게 인화시킨 이미지는 사진의 세기를 사는 대중에겐 관음의 물신 0순위다. 명사 사진가의 계보는 사진이 발명된 이래 지속되었다. 근대 이전 나다르가 촬영한 문필가와 예술인의 초상 사진을, 2차대전 뒤 카쉬의 거물 인사 사진이 이어받더니 탈현대 시대에 와선 애니 레보비츠와 데이비드 라샤펠이 대중매체를 전시장 삼아 현란하게 포장된 스타를 재현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는, 객체(유명인)보다 촬영 주체(사진가)의 지위 변화다. 셀레브리티 초상 전담 사진가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희귀하고 희소한 인물들과 지근거리에서 있을 뿐 아니라 ‘급기야’ 그들을 조종하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외모와 매너마저 흔하디흔한 찍새들과는 거리를 둔다. 촬영 객체의 화려한 외모와 매너를 촬영 주체도 자연스레 계승하면서 연예인에 육박하는 입담과 패션 감각까지 갖춘다. 촬영 주체인 그들이 공중파와 대중매체의 취재 대상으로 지위가 역전되는 현상도 심심치 않다. 예술(가)의 위상과 예술의 기준도 미디어 시대에 어울리게 일대 변모 중이랄까. 명사 전문 사진가의 전시 공간은 제도권 전시장이 아니라 대중 미디어다. 전시장 격인 미디어도 셀레브리티의 몸값을 부풀려줄 검증된 사진가의 뷰파인더, 피사체를 다루는 숙련된 안목을 특정 인물에 집중시켜 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유명인사 전문 사진가의 권능을 필요로 한다. 한때 엄숙한 화이트 큐브에 묶였던 유명인을 찍은 사진이 차츰 지면과 사이버 공간으로 신속하게 거처 이동 중이다.

자기 재현과 자기 복제로 사활이 결정되는 셀레브리티에게 근사한 자기 포장만큼 생존율을 보장하는 건 달리 없다. 그러니 ‘일급 포장 전문가’와의 협업은 선택 사항이 아닌 절박한 필수다. 포장 전문가의 지명도가 제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급이 맞는’ 촬영자를 찾아 나선 결과, 촬영 객체와 주체의 명성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명사 초상 전문 사진가’의 몸값이 한층 더 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유명인 전담 촬영이 안겨준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사진 전문’이라는 속세의 딱지는 한사코 수용하길 꺼린다. 괜한 발뺌이기보다 예술사진과 상업사진을 가르는 엄격한 이분법이 (사진)업계에 존재해서다. 하지만 구시대적 이분법의 고집도, 스타일과 위치 등 모든 면에서 일대 변화 중인 예술의 존재론을 막진 못한다.

그렇지만 유명 인사의 고수익은 유명인의 능력보다 그들의 시장 독점권이 보장한다고 분석한 어느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명사 전문 사진가가 누리는 물질적 보상과 명성도 때깔나는 촬영 기술보다 때때로 검증된 옷걸이(피사체)의 유명세를 반복 재현하는 독점적 지위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