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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스콜리모프스키의 ‘불안’을 이해하고 싶다면

<딥 엔드> Deep End (블루레이)

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상영시간 88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PCM 2.0 영어 자막 영어 / 출시사 BFI(영국, 2장) 화질 ★★★★☆/ 음질 ★★★★☆/ 부록 ★★★★

2년 전, 짧은 인터뷰차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와 만났다. 영화제에서 그와 인터뷰하는 첫 주자였기에 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앉기도 전에 그는 대뜸 “내 영화를 봤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더니, 이번엔 어떻게 그걸 볼 수 있었는지 하나씩 캐묻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문라이팅> DVD의 제작을 진행했던 나로선 솔직히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작품별로 일일이 대답한 뒤에야 그는 인터뷰 사인을 보냈다. 그는 자기 영화를 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화를 보지 않은 자와는 인터뷰하기를 싫어했다(그날 모 기자가 준비없이 인터뷰를 진행하다 창피를 당했다고 들었다). 인터뷰 도중 스콜리모프스키는 몇편의 DVD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일러줬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스콜리모프스키 영화의 DVD는 지금도 희귀한 편이다. 폴란드에서 나온 초기 작품집이 그나마 괜찮고, 나머지 출시본 중에서 추천할 만한 건 드물다. 그런 와중에 영국과 독일에서 각각 <딥 엔드>의 블루레이를 출시했다. <딥 엔드>는 스콜리모프스키가 폴란드를 떠나 만든 영화 가운데 중요한 작품에 해당하지만 베니스영화제에서의 호평 이후 배급상의 문제로 전설의 컬트로 남은 영화다. 보기 힘들었던 스콜리모프스키 영화가 놀랍게도 블루레이로 뛰쳐나온 것이다.

<딥 엔드>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공중목욕탕의 안내원으로 일하게 된 소년 마이크의 이야기다. 마이크는 동료인 수잔을 마음을 두는데, 그녀는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면서도 왠지 마이크에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딥 엔드>는 1960년대 ‘스윙잉 런던’의 끝자락에 선 작품이다(실내장면은 대부분 독일에서 찍었다). ‘타자들이 읽은 1960년대 영국’을 언급한 작가 데이비드 톰슨은, <하인> <혐오> <욕망>의 리스트를 <딥 엔드>가 마감했다고 썼다. 청춘과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 동시대 영국영화와 비슷한 듯하지만 영화의 방향은 전혀 다르다. <낵, 어떻게 구하지> 같은 영화의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는 <딥 엔드>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한 방울의 피, 그리고 캣 스티븐스의 노래 <아마 난 오늘 밤 죽을 거야>로 시작한 영화는 제목 그대로 깊은 수렁을 향해 돌진한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비극으로 끝나 의아해했지만 스콜리모프스키는 바로 그 결말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럽의 젊은 작가들과 교류했던 스콜리모프스키는 자기 식으로 그들의 뉴웨이브에 대응하곤 했다. 장 피에르 레오를 기용해 벨기에에서 만든 1967년작 <출발>이 누벨바그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딥 엔드>는 영국의 성난 젊은이를 스콜리모프스키식으로 읽은 결과였다. 섹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극장장면을 보자. 거대한 스크린에선 성 해방을 외치는 영화가 상영 중이지만 여자에게 성적 몸짓을 가한 주인공은 경찰서로 잡혀간다. 눈에 띄는 점은 청춘영화로서 <출발>과 <딥 엔드>가 인물의 불안과 혼돈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망명자의 삶을 산 스콜리모프스키 영화의 첫 번째 주제는 ‘불안’이며, 그것을 읽을 때에야 <외침>에서 근작 <이센셜 킬링>에 이르는 난해한 작품들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이야기는 틀 바깥에서 진행되고, 기대를 배반하는 인물은 모호한 대상으로 남으며, 결국 관객이 불안에 몸서리를 친다.

<딥 엔드>의 블루레이는 2010년의 복원 마스터를 사용했다. BFI가 종종 선보이는 블루레이와 DVD의 합본 형태로 출시됐으며, 자막과 부록이 충실하다. 2011년에 새로 제작된 메이킹필름(75분), 삭제장면 설명(12분), 여주인공 제인 아셔가 출연한 단편영화, 예고편, 해설 책자를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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