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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공작소] 일상의 작은 진실을 발견하라
지민(영화감독) 2011-08-18

지민 감독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1) - 이야기 구성

소셜커머스 서비스 CF영상.

쌍둥이 두 아기가 기저귀만 한 채 마주서서 ‘다다다다’라고 서로 외치는 화면, 생각나시나요? 이 심오한 아기들의 대화는 양말이 한짝밖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만들어져 광고에 활용되기도 했죠.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와 함께 사는 저에게는 ‘나도 저런 장면들을 좀 찍어뒀다가 사람들과 같이 보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아마 아이를 키우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만만찮게 재미있는 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이번 ‘영상공작소’에서는 이런 마음에 ‘뽐뿌질’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우리 가족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이번 영상공작소 주제거든요. ‘영화’라고 해서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족여행의 추억을 담은 여행기일 수도 있고, 아이나 반려동물의 성장을 담은 육아일기일 수도 있고, 엄마가 넋두리하듯 풀어놓는 구구절절한 인생사를 담은 자서전이 영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가족영상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자료들이 있어요. 오래전에 써놓은 일기장, 색이 바랜 옛날 사진이나 휴대폰으로 찍어둔 사진, 최신 DSLR로 찍은 동영상도 모두 가족영상의 훌륭한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기를 쓰거나 사진, 동영상을 찍는 건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니까요. 앞서 예를 든 쌍둥이 아기의 부모도 그 장면을 잊지 않으려 촬영을 해두었겠지요. 그런데 그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광고에까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사실 아이들의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 클립들을 이용해서 가족영상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혹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셨나요? 만든 작품을 가족 몇명이 함께 볼 거라면 귀여운 아기의 웃는 얼굴만 5분 동안 나와도 다들 ‘꺄아’ 소리지르며 즐겁게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 또 가족들끼리 보더라도 더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단지 예쁜 모습을 나열하는 것만으론 안돼요. ‘이야기’가 있어야 하죠. 이야기의 목적은 내가 가진 경험이나 내가 느낀 기분을 작품을 본 사람이 자신의 경험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가족의 영화 만들기’의 첫번째 과제입니다.

<아이들>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성장 ‘이야기’

류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이들>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육아일기가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을 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에는 첫째 하은이가 뒤집기하는 모습, 워킹맘인 감독이 둘째 한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던 순간, 셋째 은별이가 태어나던 때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감독은 12년간 찍어온 화면들을 70분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 ‘일하는 엄마의 세 아이 키우는 좌충우돌 육아무용담’이라는 옷을 덧씌워 화면을 재해석해냅니다. 그리고 그 옷에 맞는 화면들을 추리고, 카메라가 담지 못한 장면이나 감정은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며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아이들>은 ‘준비없이 결혼해 얼떨결에 엄마가 된 감독’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그래서 다른 워킹맘들에게 위로의 응원가를 건넬 수 있는 감독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이런 ‘옷’을 전문용어로 플롯이라고 하죠. 영상을 비롯한 많은 창작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롯은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시작,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원인과 결과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은 시작과 끝이라는 지점없이 흘러가지만 그 삶의 어떤 부분들을 오려내어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플롯은 이야기가 시작된 수천년 전부터 있어왔고 크게 몇 가지의 비슷한 형태로 분류됩니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이라는 책에서 플롯의 종류를 추구, 모험, 복수, 수수께끼, 발견 등의 스무 가지로 정리했는데, 어떤 플롯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참고해볼만합니다. 이는 이런 플롯의 공식에 이야기를 끼워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패턴의 도움을 받아 힘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 나오는 플롯의 유형 중에 우리가 만들 가족영화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발견’이 아닐까 해요. 이 책에서 말하는 ‘발견’ 플롯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장’과 닮아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나 평범한 일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 발견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 어때요? 익숙하게 느껴지시지 않나요?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의미’란 꼭 명언집에 나올 법한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어요. 일상을 통해 깨닫게 된 작은 진실이면 충분합니다.

<아이들>에서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하은이가 처음으로 혼자 마을버스를 타는 모습을 창문에서 지켜보고 있는 카메라, 곧 감독인 엄마의 시선이었어요. 초조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던 하은이가 서 있던 버스 정류장은 버스가 떠난 뒤 아무도 없는 빈자리가 됩니다. 그 곳을 오래 응시하는 카메라는 그렇게 엄마의 품을 떠나 한 걸음 내디딘 아이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는 대신 아이를 지켜보고 품에서 놔주어야 하는 엄마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장면이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영화 앞부분에서 차곡차곡 엄마와 아이의 감정을 이야기로 쌓아두었기 때문이고요.

위 <아이들>, 아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하나를 더 예로 들어볼까요? 더그 블록 감독의 다큐멘터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The Kids Grow Up)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무려 20년간 촬영해 만든 영화입니다. 20년이라는 촬영 기간에는 엄청난 촬영본이 있었겠지만 감독은 자신과 딸의 관계에 집중하며 그녀의 성장기를 써나갑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든 카메라에 찍히고 싶어 하던 딸은 이제 대학에 입학해서 집을 떠나고, 그 이별의 시간을 자신의 영화를 만드는 데 써버리는 아빠를 원망하는 어른으로 자라 있습니다. 딸과의 모든 순간을 남기려던 감독은 딸의 반응을 보며 딸이 훌쩍 커버렸음을 깨닫게 되고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카메라 없이 딸과 마주앉아 대화를 하지요. 이 역시 표면적으로는 딸의 성장기(원제목부터가 ‘The Kids Grow Up’입니다)를 내세우고 있지만 딸을 촬영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한 감독 자신의 성장기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해 보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숙해졌다고.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그 기억들을 따라가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야기의 시작은 등장인물 캐릭터 잡기부터

자,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첫 회차에서는 물꼬를 틀 수 있는 과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만들 가족영화는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이 있고, 그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캐릭터를 구축해보는 것입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극영화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건데 무슨 캐릭터냐고요?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만약 엄마가 다른 사람에 비해 다혈질이라면 나는 엄마가 화를 내더라도 금방 풀린다는 걸 알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엄마를 그저 못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깝고 익숙한 사람들이라 그들의 성격과 특징을 알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르니 소개를 해줘야 해요. 가족의 모든 점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그저 주인공인 내 가족을 가장 잘 표현해줄 특징들을 잡아내면 됩니다. 내가 내 가족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중요하고요. 캐릭터를 잡는 게 막연하다면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여러 캐릭터 중에서 내 영화에 나올 가족과 가장 닮아 있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떠올려보세요. 몇명의 캐릭터들이 떠올랐다면 그 캐릭터와 내 영화의 주인공의 차별점은 뭔지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해보면 구체적으로 캐릭터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의 일상에도 시트콤보다 재미있는 순간, 그 어떤 휴먼다큐보다 마음을 울리는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순간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재해석해낸다면 그 발견의 기쁨만으로도 즐겁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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