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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68혁명 이후 그들의 삶은

<이정표들> Milestones

감독 로버트 크레이머 & 존 더글러스 상영시간 199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자막 영어 / 출시사 카프리치(프랑스, 2장) 화질 ★★★☆ / 음질 ★★★☆ / 부록 없음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와카마쓰 고지의 <실록 연합적군>, 울리히 에델의 <바더 마인호프>, 그리고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가 폭발하듯 등장했다. 68혁명을 치열하게 통과한 세 나라에서 온 영화는 공히 혁명을 꿈꾼 좌파의 투쟁과 흥망을 이야기한다. <카를로스>를 본 날, 나는 세편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 까닭이 궁금했다. 평론가 김성욱은 “그 시대가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세 영화의 중심에는 1970년대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어둠에 묻혔으니, 영화가 입을 연 것이다. 세 영화는 좌파의 혁명을 찬양하거나 섣불리 평가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세 영화는, 현대사의 잊힌 시간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르면 볼 일이다. 판단은 그 다음이다. 확실한 건 1980년대를 지나면서 몸으로 역사를 쓰는 시기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지식인을 보라. 고작 입과 펜으로 이슈가 벌어지는 곳마다 순례하는 자들이 주변에 널렸다.

당시 좌파가 불러일으킨 혼란만 기껏 회고되는 요즘, 그들의 꿈과 이상은 별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 그래서 <이정표들>을 꺼내들었다. 혁명기를 대표하는 독립영화 작가인 로버트 크레이머와 존 더글러스가 연출했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상영돼 세르주 다네 등의 비상한 관심을 얻었다. 그 시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돼지의 해>가 혁명의 심장부에서 탄생한 다큐멘터리라면, <이정표들>은 혁명 이후의 삶을 그린 프레스코화다(이듬해 나온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에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두 감독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삶의 전개 양상을 보았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 즉흥 연출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이정표들>은 인권운동, 반전운동, 여성운동 등에 몸담았던 5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픽션이다. 현실 정치와 문화, 역사, 베트남전 등을 언급하는 순간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들이 사는 모습이다. 그들은 집단농장, 집단 거주지, 무허가 주택, 심지어 길 위에서 산다. 좌파들이 예언한 것처럼, 그들은 의식없이 자유를 외치다 패잔병으로 남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흐른 시간만큼 늙었으며 때때로 힘과 비전을 상실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정표들>은 무의미한 삶의 나열에 불과한 걸까? <이정표들>은 다른 삶을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산층의 안일한 삶을 버린 그들 대다수는 끊임없이 삶의 태도를 고민한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이끄는 삶을 살지 않았기에, 타인을 착취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에 가난하지만, 최소한 꿈과 이상을 배신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극중 바다를 보려고 길을 떠난 아버지(그는 한때 교수였다)는 어린 딸에게 돈이 부족하니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제안한다. 눈 내리는 해변에서 그는 딸에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을 들려준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 딸의 젖은 양말을 말린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한 여자의 출산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후반부는 흡사 ‘그해 태어난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묻는 것 같다. 크레이머는 “우리는 과거에서 비롯된 아이들이며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어떠한가. 사회는 왜 그들의 꿈과 엇갈린 길을 갔을까. 어쨌든 독배는 영화와 정의로운 자의 몫은 아닐 거다. 크레이머가 삶을 마친 프랑스에서 출시된 <이정표들>의 DVD는 2008년 복원판을 수록했다. 민중의 무장봉기를 그린 가상의 드라마이자 크레이머의 또 다른 대표작 <아이스>가 함께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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