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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시선으로 도덕과 예술 사이의 불륜을 바라본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윤혜지 2011-08-24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기묘한 문양의 너울거림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윽고 스트라빈스키(매드 미켈슨)의 발레 <봄의 제전>이 초연되고, 지나치게 전위적인 그의 음악은 대중의 비난을 면치 못한다. 그 가운데 무대를 지켜보던 샤넬(안나 무글라리스)은 파격을 보여준 그에게 흥미를 가진다. 1917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스트라빈스키와 가족들은 샤넬의 후원으로 그녀의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불륜의 관계가 된다. 스트라빈스키의 아내는 이를 비관해 스트라빈스키의 곁을 떠나게 되고,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애인인 동시에 서로에게 강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조력자로서 남는다.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예술적 동기 부여를 위한 불륜이 정당한가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은 교묘히 피해간다. 줄곧 냉정한 태도로 일관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을 인물의 감정에 동의하기 힘들게 만든다. 향수를 개발 중인 샤넬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썩는 냄새를 풍긴다고 말하는 아내의 핏기없는 얼굴은 이들의 불온한 관계를 더 가슴 아프게 강조한다. 그러나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샤넬이 스트라빈스키를 유혹하기로 결심할 때를 허공에서 지켜보게 되는 순간과, 나이 든 샤넬이 침대 위에 늘어져 멍하니 앞을 응시하는 순간의 공허함은 여태까지 쌓아온 샤넬에 대한 반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허망한 순간이다.

엔딩에서도 오프닝 시퀀스의 기묘한 문양이 나타나는데, 도덕과 예술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영화의 곤란한 입장을 감추기 위함은 아닌지. 샤넬의 디자인이 반영된 인테리어와 의상, 적절하게 삽입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윤리적 딜레마로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대신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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