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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거장의 흔적을 차곡차곡
이영진 사진 최성열 2011-08-30

홈페이지 ‘김수용의 영화마당’ 선물받은 김수용 감독

후학들은 흔히 스승의 정년퇴임식에 존경을 담아 선물을 헌정한다. 8월23일 저녁,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도 일종의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이날 주인공은 김수용 감독. 정지영, 장길수 감독을 비롯한 제자들과 후배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장에게 무엇을 선물했을까. 인터넷으로 ‘김수용의 영화마당’(http://kimsooyong.co.kr)을 검색해보자. 김수용 감독이 환한 웃음으로 받아든 선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행사가 열리기 전,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김수용 감독은 몇 년 전 술자리를 어제 일처럼 기억하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나이 들었다고 거치적거린다 하니까 굉장히 조심하면서 살아요. (웃음) 지난 1년은 집 짓는 데 온 신경을 쏟았어요. 장충동 집 헐고 그 자리에 7층짜리 집을 지었어요.

-7층이면 집이 아니라 빌딩이네요. =50년 전에 500만환 주고 산 집이에요. 그때 내가 1편 연출하면 50만환 받았으니까 10편 연출료 주고 산 거예요. 축대 위에 있는 집이라 전망이 좋았어요. 아침에는 금호동에서 뜨는 해 보고, 저녁에는 명동성당으로 지는 해 보고. 그런데 부자들이 집 주변에 빌딩을 짓는 바람에 우리 집이 비참하게 가라앉았어요. 부자들이 와서는 또 유혹하잖아요. 집 팔라고. 아,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7층으로 지었어요. 한 층은 기념관으로 만들까 해요. 내가 만든 영화는 물론이고 내가 읽었던 책이나 옷까지 고스란히 남겨둘 거예요. 신상옥, 유현목 감독도 그런 공간을 원했는데, 결국 못했잖아요.

-오래 전부터 준비하신 건가요. =가끔 유치한 짓 같기도 한데.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일본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 가사처럼, 내 삶의 흔적이 먼 훗날 어떤 영화 감독 지망생의 노트 위에 영롱한 이슬이 되어 떨어질지도 모르잖아요. 이슬이 될지 장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후배들이 나서서 홈페이지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홈페이지는 콘텐츠가 다 채워져 있진 않던데요. =정지영 감독이 애쓰고 있어요. 김수용이 만든 영화는 이런 거다, 그런 걸 알려주는 거죠. 제자들이 컴퓨터로 띄워준 화면 보니까 신기해요. 사실 15년 전에 컴퓨터 배운다고 교습소까지 다닌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게다가 만날 나보고 ‘감독님, 아셨죠?’라고 반문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그냥 컴맹이 돼버렸어요.

-청주대학교를 시작으로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지금이야 영상 관련 학과도 많고 교수 중에 현장 영화인이 많기도 합니다만. =1981년에 청주대에서 처음 했는데, 그때는 교수검정제도가 있었어요. 장?차관이 포함된 심사위원들에게 80점 이상 받으면 자격이 주어지는 거예요. 연극 쪽에 차범석하고 나하고 둘이서 붙었어요. 나야 경력이 없으니까 부교수로 들어갔는데, 그 다음해에 그 제도가 없어져버렸지. 중앙대에서 강의했을 때 기억도 나요. 김희애, 박중훈, 변우민등등 유명한 스타들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었으니까.

-1970년대 현장에서 가르친 감독들과 1990년대 강단에서 가르친 제자들은 좀 차이가 있나요. =내가 95학번까지 가르쳤어요. 그전에 내 연출부 했던 장길수, 정지영 같은 감독들은 의식이 있어요. 우연히도 <하얀전쟁>과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도쿄영화제와 몬트리올영화제 갔을 때 내가 심사위원이었는데, 한국의 젊은 감독들이 부르짖는 걸 제대로 봐달라고 여러 번 설득했어요. 몬트리올에선 첸카이거한테 네가 영어 잘하니까 우리 둘이 합심해서 양코배기하고 싸우자 이러기도 하고. (웃음) 요즘 감독들은 의식보다는 재미에 더 치중하는 편이지요.

-반세기 넘게 109편의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만드신 영화 중 다시 리메이크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요. =눈이 왔다 쳐봐요. 그 위를 걸으면 발자국이 찍히잖아요. 돌아보면 다시 밟고 싶을까요? 다른 설원을 찾아서 걷고 싶겠지.

-프린트가 유실된 작품이 많습니다. 그 중 관객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꼽으신다면. =<굴비>(1963)가 그리워요. 베니스국제영화제 나가려고 만들었는데, 일부에서 일본영화 표절 혐의를 씌워서 좌절됐어요. 제대로 평가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리고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이후에 <맨발의 영광> <사격장의 아이들> 등 아동영화를 한 10편 만들었는데 그 출발점이 된 영화니까.

-요즘도 독서 많이 하시나요. =다자이 오사무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것을 주로 봐요. 하루에 4시간 정도는 책을 읽는데, 그게 건강 유지법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지금 말기고령자인데, 신기하게도 나이 먹으니까 내 안의 거짓말들이 다 몸 밖으로 나가요. 거짓말이 나가고 뭐가 남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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