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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드라마와 신파의 힘을 믿는 두 예술가의 만남 <통증>
김도훈 2011-09-07

남순(권상우)은 무통증 환자다. 그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죄책감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다. 다행히도 그는 후천적인 재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사채 이자를 뜯어내며 살아간다. 어떻게? 채무자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학대함으로써 채무자들을 위협해 돈을 받아내는 방법이다. 후처치는 ‘후시딘’이면 충분하다. 동현(정려원)은 혈우병 환자다. 피가 응고되지 않는 병 때문에 그녀에게는 작은 상처도 치명적이다. 옥탑방에 살며 홍대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동현은 사채 이자를 뜯으러 온 남순을 만난다. 끝없이 동현을 따라붙으며 돈을 내놓으라 협박하던 남순과 인생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며 반항하던 동현은 어느 순간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통증>은 멜로드라마의 두 거장이 손을 맞잡은 멜로드라마다. 한 명은 피비린내 나는 남자들의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온 곽경택이고, 다른 한 명은 인터넷 웹툰계의 눈물의 제왕인 강풀이다. 좀 이상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둘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뒤따라온 팬이라면 분명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촌스럽다. 곽경택과 강풀은 우직한 드라마와 신파의 힘을 믿어 마지않는 이야기꾼들이다. 세련된 기교의 힘을 믿는 세상에서 이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또 하나가 있다. 곽경택이 강풀의 원안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억수탕>으로 데뷔한 이래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원안을 가지고 작업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곽경택이 강풀을 이야기의 동반자로 선택한 건 꽤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지난 두 편의 영화 <태풍>과 <사랑>은 예전 작품들의 동어반복에 가까웠다. 처절함은 있으되 섬세함은 떨어졌다. 강풀의 다소 감상적이긴 하지만 세심하게 어루만진 캐릭터와 이야기의 결을 자신의 영화로 끌어옴으로써 곽경택은 언젠가부터 변비처럼 막혀 있던 ‘곽경택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듯하다.

곽경택과 강풀의 만남이 가져온 또 다른 장점은 드라마틱한 악역의 부재다. 이게 장점이라고? 그렇다. 그러니까 지난 20여년간 한국영화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악역의 기능성을 한번 생각해보라. 좋은 악역은 이야기를 살리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통째로 집어삼키기도 하지 않았던가. 곽경택 역시 악역의 가능성을 믿어온 연출가다. 그는 선과 악(<태풍> <사랑>)의 부딪힘으로부터 이야기의 에너지를 뽑아내거나, 그게 아니라면 악과 악(<친구>)의 충돌로 이야기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통증>에서 드라마틱한 악역을 지워버린다. 사시미 칼을 들고 설칠 법한 악역들은 개성없는 조연에 머무르고, 남순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범노(마동석) 역시 인생의 쓰레기통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일 따름이다. 대신 곽경택은 남순과 동현의 사랑에 온전히 집중한다.

여기서 강풀과 곽경택의 세계가 충돌한다. 곽경택은 남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혹은 그러길 원하는) 연출가는 아니다. 두 사람의 섹스를 360도로 회전시키는 장면 같은 걸 보다보면 “나도 화면을 쳐다보질 못하겠어!”라고 외치는 곽경택의 걸쭉한 사투리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이런 충돌을 완화하는 건 권상우와 정려원의 좋은 연기다. 권상우는 양익준의 <똥파리>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성을 근사하게 발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정려원은 신파적 감성을 강렬하게 고조시킬 줄 아는 의외의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곽경택과 강풀의 세계가 공히 지니고 있는 남성적인 장엄함이 못내 거슬릴 관객도 있을 것이다. <사랑>과 <순정만화 시즌2-바보>의 마지막 장면을 견딜 수 없었던 관객이라면 <통증>의 마지막을 집어삼키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비극이 꼭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막을 내려야 하냐는 질문 역시 유효하다. 그래도 <통증>에는 뭔가 촌스러울 정도로 진심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두 예술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둘의 진심과 의지는 종종 충돌하지만 결국 서로를 단단히 붙들어맨다. 오로지 좋은 신파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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