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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인도네시아에서 탄생한 놀라운 여성영화

카밀라 안디니의 데뷔작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국가로 한국, 일본, 인도가 손꼽히지만 인도네시아가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있다. 공포영화나 멜로드라마, 섹시코미디 등은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 몇 년간 작가영화는 침체기를 겪었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거장감독 가린 누그르호는 무대극 연출에 집중하고 있고, 리리 리자나 난 아크나스 등도 지난 2, 3년간 신작이 없었다. 젊은 감독 중에서는 데뷔작으로 주목 받았던 <날고 싶은 눈먼 돼지>(2009)의 에드윈이 신작을 준비 중이고, 조코 안와르루디 소자르워는 주로 상업영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올해 인도네시아영화는 뛰어난 신인감독의 대거 등장과 독립영화 제작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뛰어난 시나리오작가로 인정받는 살만 아리스토가 자카르타의 일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 <자카르타 마그립>, 퀴어시네마의 새로운 장을 연 테디 소리앗마자의 <사랑스런 남자>, 언청이 소년의 꿈을 다룬 아리 시하살레의 <딱정벌레 병사>는 주류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주제와 스타일을 선보였다.

하지만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신인감독은 단연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의 카밀라 안디니다. 인도네시아는 1만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국가다. 섬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도서문화가 존재하고 있는데, 때로 이러한 다양한 도서문화는 인도네시아영화에 주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중 바조족은 특히 세계에서 몇 안되는 해양집시족이다. 지금은 대부분 정착생활을 하고 있지만 바다를 떠돌던 바조족의 문화는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바조족의 문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바다에서 실종된 아빠를 기다리며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12살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카밀라 안디니는 바조족의 아름다운 문화와 풍습을 화면 가득 담아낸다. 특히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거울’은 바조족의 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거울’은 12살 소녀와 엄마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띠는데, 소녀에게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 즉 아버지를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특별한 힘이 담겼다고 믿는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서의 ‘거울’은 그 어떤 영화에서의 ‘거울’보다도 아름다운 상징적 매개물이다. 또한 소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육지에 정착해서 살게 된 이후 바다를 떠돌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해양집시의 정체성과 닮아 있다.

이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든 이는 여성감독이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인도네시아 뉴웨이브의 선구자인 가린 누그로호 감독의 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 놀라운 데뷔작은 가린 누그로호의 딸이라는 딱지를 넘어선다. 그녀의 영화적 이력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배우고 이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축적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익힌 촬영 스타일과 감성이 이번 데뷔작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여성영화다. 소녀와 엄마의 이야기를 여성감독과 여성제작자가 완성해낸 것이다. 제작자는 배우이면서 해양문화에 조예가 깊은 여성제작자 나딘 찬드라위니타다. 카밀라 안디니는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와 의기투합하여 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벌써부터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면 너무 성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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