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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첩보 심리드라마 <언피니시드>
장영엽 2011-10-05

1965년 동베를린.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 레이첼(제시카 채스타인)과 데이빗(샘 워싱턴), 스테판(마튼 초카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을 상대로 끔찍한 의학 실험을 저질렀던 ‘비르케나우의 살인마’ 보겔 박사(제스퍼 크리스텐슨)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1997년 이스라엘. 이들의 30여년 전 업적을 기록한 논픽션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레이첼(헬렌 미렌)과 스테판(톰 윌킨스)은 부부가 된 듯한데, 이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부부는 출판기념회날 동료 데이빗(키아란 하인즈)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언피니시드>는 2007년 이스라엘에서 개봉해 큰 화제를 모았던 <빚>(Ha-Hov)의 미국판 리메이크다. 영화의 제목대로 이 작품은 젊은 모사드 요원들이 과거 동베를린에 묻어두고 온 진실이 현재의 그들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화되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큰 구멍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기에 <언피니시드>는 60년대 동베를린과 90년대 텔아비브를 오가는 플래시백을 종종 사용하며 사건의 전말을 차분히 직조해나간다. 기본적으로 첩보물의 형식을 띠지만 이 영화는 사건보다 특정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의 관계와 심리 상태에 주목하는 심리드라마에 가깝다. 젊은 모사드 요원들은 안전가옥에서 인질 보겔과 함께 생활하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져간다. 보안문제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들은 나치 전범인 보겔의 극악무도함에 치를 떨다가도 그를 개처럼 묶어놓고 사육하는 자신들의 행동을 마냥 긍정할 수도 없어 혼란스럽다. <언피니시드>의 이러한 형식과 구조는 존 매든의 전작인 영국의 유명 수사드라마 <프라임 서스펙트>를 떠올리게 한다. 여수사관 제인 테니슨(헬렌 미렌이 연기했다)을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형사 캐릭터 반열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캐릭터를 이야기 전개를 위한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하는 미국 수사물과 달리 인물을 깊이있게 파악함으로써 결말의 이해를 돕는 품격있는 수사물이었고 <언피니시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편 과거와 현재의 극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사실적이고 다소 폭력적인 격투장면은 영락없이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킥애스: 영웅의 탄생>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감독 매튜 본의 영향이 느껴진다.

<프라임 서스펙트>와 마찬가지로 <언피니시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여배우들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로 테렌스 맬릭의 극찬을 받았다던 ‘젊은 레이첼’ 제시카 채스타인은 불안에 잠식되어가는 순수했던 20대 여성의 모습을 안정적으로 선보인다. 노년의 레이첼을 맡은 헬렌 미렌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의 말미, 과거의 죄와 마주하기 위해 독약이 든 주사기를 들고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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