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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두개의 옥상

<부당거래>가 보여주는 시대의 풍속도

<부당거래>의 대조적인 두 옥상 풍경.

그곳은 옥상이다. ‘시민’이나 ‘시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을 법한 강북 변두리의 낡은 저층 아파트. 그 아파트 옥상에서 이동석씨 가족이 한가로이 만찬을 준비 중이다. 방수 처리도 안된 시멘트 맨바닥이지만 비닐 돗자리를 깔았고, 롯데칠성의 병 박스를 거꾸로 세워 식탁을 마련했다. 소주 두병도 수줍게 한쪽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과자인 남자는 유치원 승합차 운전사이고, 여자는 지체 2급 금치산자다. 여자는 야무진 젓가락질로 석쇠 위에다 삼겹살을 굽고, 남자는 잘 구워진 고기를 쌈 싸서 일곱살짜리 딸아이에게 먹인다. 여자아이는 모처럼 신이 났는지 짧은 팔을 펄럭이며 부모 주위를 맴돈다. 난간이 없는 옥상인 터라, 아이의 가벼운 몸은 바람이 불면 휙 하고 날아가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의 노는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 그의 입가엔 사람 좋은 미소가 그득하다. 한편, 후경으로 내려다보이는 옥상 아래 지상의 공간은 번잡하기 짝이 없다. 다세대 주택과 이층 양옥과 교회와 슬레이트 지붕과 비닐 천막, 노란 물탱크가 제각각의 색채와 질감을 뽐내며 빈틈을 주지 않고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옥상이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세종로 인근의 33층짜리 빌딩. 누구는 태경빌딩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해동빌딩이라고 부르는 건물이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이제 곧 분양이 될 것이며,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린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다. “이곳에서 더 큰 꿈을 키우십시오. 대한민국 비즈니스 신 랜드마크, 드림시티!”

바로 이 “드림시티”의 옥상 위에 최철기 광역수사대 반장과 장석구 해동건설 사장이 서 있다. 그들의 눈앞에는 서울 구도심의 스카이라인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제각각 솟아오른 마천루들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점에 기하학적인 요철을 만들어내면서, 도시 경관의 원근을 조절하고 있다. 모더니스트 건축가라면 충분히 매혹될 만한 장관이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이다. 33층 건물 옥상의 눈높이는 건축가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업자’의 차지이며, 따라서 이곳은 새로운 구축의 질서를 상상하는 조망의 장소가 아니라, 바쁜 손놀림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음모와 협잡을 꾸미는 비리의 온상이다. 도시를 내려다보며 형사가 말한다. “니네같이 법 안 지키고 사는 새끼들이 더 잘 먹고 더 잘 살어, 그치?” 한때 현장에서 칼 쓰는 일을 하던 개발업자가 답한다. “아, 그거 뭐,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린 목숨 걸고 하잖아. 무조건 잘해야지, 죽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 그들의 뒤편에 자리잡고 있던 도시의 몰골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수직 상승의 욕망으로 들끓어 오르는 콘크리트 도가니로 변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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