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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피팅 모델, 아트 상품, 또 하나의 세계

(왼쪽부터) 걸그룹 티아라의 쇼핑몰 티아라닷컴, 화가 육심원이 운영 중인 아트숍.

순진무구를 가장한 뚱하고 맹한 표정, 색조화장으로 가무스름한 아이라인, 컬러렌즈로 확장된 홍채, 화들짝 놀란 듯 치켜뜬 눈, 볼 안 가득 채운 공기, 앞으로 삐죽 내민 동그랗게 모은 입술, 입술 사이로 빼꼼 내민 혀, 쇼트팬츠로 도드라진 가녀린 허리와 포토숍으로 보정한 긴 다리, 앙증맞은 포즈의 상투성. 온라인 쇼핑몰 피팅 모델의 얼굴과 인체가 재현하는 표정은 거의 대동소이해서 유심한 관계자가 아니고선 모델들간 차이도 구분하기 어렵다.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추정될 소녀의 전형성은 저렇다. 흔하게 산재된 소녀의 전형성이지만 상품가치만은 높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발견되는 피팅 모델의 세계는 소녀의 생물학적 전성기에서 진액을 죄다 뽑아 구축한 성전 같다. 이제 거리에서 촬영기사, 진행 매니저, 피팅 모델이 한 세트가 되어 화보 촬영하는 장면은 일상적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온라인 쇼핑몰과 피팅 모델의 배후로 주류를 향한 모방심리, 주류에서 소외된 대안시장의 가능성 그리고 비공식 대중 오디션이 파생시킨 얼짱 문화가 자리한다. 전문 기획사의 양성을 거치지 않고 얼굴값 하나로 평가받은 도처의 얼짱은 쇼핑몰 피팅 모델로 기용됐고, 개중 우월한 일부는 숫제 쇼핑몰 모델 겸 운영자로 등극했다. 얼짱과 닮고픈 어린 팬들의 강한 모방심리는 쇼핑몰을 번성시켰다. 자기 노출이 제한되지 않는 시대에 미모를 자랑하며 경제적 독립까지 확보한다. ‘4억 소녀’의 신화는 이런 구조가 탄생시켰다. 어린 소녀에게 이처럼 유혹적인 손길이 또 어디 있을까. 얼짱의 미모와 의상은 제도권 패션과 연예계에 대한 차용과 오마주 그리고 도전이다. 작은 세계지만 그 안에서 피팅 모델은 스타다. 중저가로 승부하는 그들은 주류와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둘이 한 무대 위에서 스파링할 일은 그래서 없다.

(왼쪽부터) 얼짱으로 유명한 피팅 모델 조민영, 피팅 모델로 활동하는 연예인 소이.

더러 온라인 쇼핑몰과 피팅 모델의 문지방에 기성 스타들이 발을 올릴 때도 있다. 대개 한철 지나 몸값 하락한 스타가 공중파의 화면 대신 쇼핑몰의 스크린을 스테이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현역 걸그룹이 쇼핑몰을 창업하는 예도 있는데 부수입을 보장하는 홍보 매니저여서다. 쇼핑몰 방문자는 걸그룹 팬과 연령층이 일치해 간접 홍보와 수익 모두를 보장하므로. 예술에도 이처럼 모방심리, 차용, 주류와의 차별적인 거점, 대중의 차선책, 저렴한 보급 등에 힘입어 부상한 예가 있다. 아트 팬시숍에 진열된 예술이 그렇다. 난해한 현대 미술을 가까이 하기 부담스런 미술 애호가에게 보상심리를 충족시킨다. 얼짱이 운영하는 패션마다 독자적 스타일이 강조되듯, 아트 팬시상품도 아이콘처럼 고정된 예술 브랜드를 만든다. 하지만 보상심리는 비단 구매자뿐 아니라 제작자(아트 팬시상품 제작자, 피팅 모델,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에게도 적용된다. 주류에서 소외되었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시장을 스스로 개척했다는 자부심에 대중에게 직접 인정받은 점에서. 그것은 그들의 공로다. 다만 안정적 수입원과 팬의 성원에 안도한 나머지 영원한 아류로 남을 가능성도 언제나 높다. 견제받지 않는 자는 누구건 비주류에 잔류하며 승자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