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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숨은 거장을 기억하라

여전히 가족의 분열된 관계에 집중한 주아옹 카니조의 신작 <혈육>

<혈육>

해마다 9월이면 국제영화제 캘린더에서 주목받는 영화제들이 있다. 세계 최고(最古) 영화제인 베니스와 북미 진출의 교두보로 자리매김된 토론토, 스페인어권 수작들의 경연장인 산세바스티안이다. 이들 영화제를 빛낸 올해 수작 중 토론토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된 뒤 산세바스티안 경쟁부문에 상영된 <혈육>(Blood of My Blood)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중견감독 주아옹 카니조가 4년 만에 내놓은 반가운 작품이다.

첫 장편 <스리 레스 미>(1988)로 로테르담을 통해 세계 영화계에 입성했던 카니조는 2000년대 들어 칸과 베니스에 꾸준히 진출하면서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를 널리 각인시켜온 포르투갈의 대표 감독이다. 국내에는 동년배인 페드로 코스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코스타가 칸과 베니스 경쟁에 주로 초대되는 동안 주목할 만한 시선과 오리존티의 러브콜을 받아온, 자신만의 시선이 확고한 작가다.

<생존>(2001), <암흑의 밤>(2004), <잘못 태어난>(2007)은 그의 일관된 화두인 가족의 문제를 고유의 스타일로 다룬 대표작들이다. 그의 영화는 늘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관계에 천착하는 것이 특징인데, 신작 <혈육>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에는 리스본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삶이 거의 동일한 비중을 띤 채 제시된다. 마약조직에 몸담은 아들(혹은 조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딸, 식당 주인과 연애하는 엄마 등을 통해 얽히고설킨 가족사의 어두운 윤곽이 차츰 그려지는 과정은 탄탄한 연출력으로 빛나며, 충격적인 진실의 일부를 직접 전달하는 대신 끝까지 관객이 채워야 할 몫으로 남기는 것은 전작과 차별화되는 선택이다.

카니조 영화에서 가족들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관계로 묶이지 않는다. 그의 카메라는 근친상간, 계모, 계부, 배다른 형제자매 등 다소 비껴가는 관계들이 아니면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가족과 혈육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내포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들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 개념이 사실상 환상에 가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암시로 다가온다. 혈연의 문제와 가족의 치부가 카니조의 주제적 관심사라면, 그의 세계를 특징짓는 일관된 형식적 장치로 들 수 있는 것은 동일한 숏 내 독립된 대화들의 중첩과 이로 인한 공간의 확장이다. 매춘을 업으로 하는 가족이 등장하는 <암흑의 밤>이나 농가를 배경으로 가족 내 치욕적 진실을 파헤치는 <잘못 태어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런 시청각적 효과는 신작 <혈육>에서도 변주를 거쳐 재등장한다. 배면의 적절한 사용으로 프레임 전면에서 먼저 초점이 맞춰진 인물들에 이어 또 다른 인물들이 프레임의 빈 공간을 틈타 등장함으로써 그들의 대사가 중첩되도록 만드는 것은 카니조의 트레이드마크다. 그 결과 한 프레임 내에 또 다른 프레임이 창조되고 프레임이 마치 가지를 치듯 공간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러 인물군이 동시에 대화하는 것은 사실 할리우드 고전기에 이미 실험적으로 시도됐었다. 다만 그의 영화에서 이런 일관된 장치는 가족 공동체 내의 분열된 관계라는 중심 화두에 부합하는 형식적 표현이기에 주목하게 된다.

포르투갈에서 배출되는 감독들은 모두 거장 올리베이라의 자장 안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해 베니스 오리존티로 신고식을 치른 주아옹 니콜라우를 포함해, 치열한 리얼리즘의 축을 택하든 비현실과 환상의 축을 택하든 기존의 영화 틀에 대한 과감한 도전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우한다. <혈육>은 이런 포르투갈영화의 면면을 보여주는 올해의 수작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카니조는 세계 영화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독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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