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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미장센과 프레임 속의 에로스 <슬리핑 뷰티>

영화는 어느 실험실에서 시작된다. 한 박사가 고무관에 작은 고무풍선을 테이프로 붙이고 있다. 그 뒤로 스무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루시(에밀리 브라우닝). 박사가 그녀의 벌어진 입속으로 관을 밀어넣는다. 헛구역질이 올라오지만 관은 계속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초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의 긴 삽입. 소녀는 어떤 연유에서 이런 실험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일까. 역시 돈일까. 겉으로는 집세를 벌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스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몸은 삽입의 쾌락을 갈구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화폐의 교환물로 내놓는다. 이후 루시는 부유한 노인들에게 ‘슬리핑 뷰티’가 되어준다. 수면제를 먹고 잠든 시간 동안 자신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하지만 고용주 클라라는 고객들에게 그녀를 ‘사라’라는 이름의 성녀로 소개시키며 삽입을 금한다. 대신 소녀의 어린 살갗을 파고드는 것은 늙은 죽음이다.

소설만 쓰다가 <슬리핑 뷰티>로 한걸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한 줄리아 레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확신할 수 없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영화를 보는 행위란 극장이라는 “어두운 방” 안에서 지각의 변화를 경험하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영화는 ‘지각’보다는 ‘자각’을 강화시킨다. 관객에게 당신은 불 꺼진 깜깜한 방에서 스크린 위에 떨어지는 빛을 훔쳐보고 있다고 알려주기. 원신 원숏이 계속되는 가운데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사람을 나누어 담지 않는다. 숏 리버스 숏이 없다. 딱 한번 예외가 있다. 클라라가 ‘슬리핑 뷰티’의 첫 번째 고객에게 서글픈 도움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백발의 노인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의 마지막 문장을 되뇌면서 자신의 노쇠한 육신에 대해 고백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를 향해 클라라가 말한다. “여긴 안전해요. 부끄러워 마세요. 아무도 안 봐요.”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는 동시에 관객에게도 같은 사실을 인지시킨다. 당신은 지금, 나신의 소녀를, 쪼그라든 노인의 성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관음증적 태도를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위로하듯 어루만진다.

영화는 극장 안에 앉아 있던 관객을 사라의 밀실 안으로 초대한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내통장면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지상에 붙박인 육체들의 몸부림을 차가운 미장센과 프레임 속에서 들여다보노라면 루이스 브뉘엘, 스탠리 큐브릭, 미카엘 하네케 같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감독이 에밀리 브라우닝에게 <안티 크라이스트>를 보라고도 했단다. 작가의 탄생을 예고하기는 망설여지지만 거장들의 유산을 나름 정연하게 조합한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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