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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더 원
2002-01-15

■ Story

우주는 하나가 아니고, 무한대의 우주가 병렬해 있다. 나 역시 하나가 아니고, 우주마다 또다른 내가 있다.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갈 수 있다는 양자터널을 발견한 뒤,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이 만들어진다. 그 일원이던 율라우(이연걸)는 다른 우주의 자신을 죽이면, 그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우주의 자신을 하나씩 죽여간다. 123명의 자신을 살해한 율라우는 마지막 남은 게이브(이연걸)를 죽이기 위해 지구로 온다. LA의 경찰 게이브는 범인을 호송하던 중 총격을 가하는 남자를 쫓다가, 그가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율라우는 게이브를 쫓으며 계속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은 그것이 게이브의 짓이라고 생각한다. 혼돈에 빠진 게이브에게 나타난 로데커와 이반은, 율라우의 목적을 알려준다. 그가 게이브를 죽이고 ‘신’이 되려 한다는 것을.

■ Review

동족을 죽이고, 그의 에너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건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대표작이자, 러셀 멀케이 감독의 역작 <하이랜더>의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영원한 생명을 자랑하는 ‘하이랜더’의 목이 잘렸을 때, 그의 힘은 죽인 자에게 전이된다. 하이랜더는 동족의 목을 베고, 그의 에너지를 얻어,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죽여버린다. <더 원>의 율라우는 동족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자기 자신을 죽인다. 그의 목적도 다른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 ‘유일한 자’가 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더 원>의 아이디어는 꽤 흥미롭고 기발하다. 예정된 죽음의 순서가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제임스 웡의 데뷔작 <데스티네이션>이 그랬듯이.

홍콩 액션이 상종가인 지금, <더 원>은 홍콩 무술의 달인인 이연걸을 떼로 등장시킨다. (대부분은 사진으로만) 두 사람의 이연걸이 맞대결을 벌인다는 발상도 황홀하다.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고질라>의 ‘중요한 것은 크기’라는 허풍이나 마찬가지다. 제임스 웡은 이연걸을 둘이나 등장시키면서도 여전히 와이어 액션과 특수효과에만 집착한다. 이연걸의 특기인 무영각조차도 특수효과에 의존하여 맥을 빼놓는다. <더 원>은 굳이 이연걸이 아니라 아무나 출연해도 상관없을, 뻔한 액션영화다.

<더 원>에서 유일하게 높이 살 점은, 중국 무술을 율라우와 게이브의 성격에 맞게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엑스맨>의 무술감독 원규는 율라우에게 직선적인 형의권을, 게이브에게 상대의 힘을 이용하고 원의 형태로 움직이는 팔괘장을 쓰게 한다. 부드러운 팔괘장의 게이브는 율라우를 물리친다. 하지만 게이브가 팔괘장을 쓰는 것은 아주 잠시다. <키스 오브 드래곤>의 뤽 베송과 달리, 할리우드는 여전히 이연걸의 진정한 가치를 무시한다. 그것이 <더 원>의 유일한, 최악의 문제점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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