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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물의 컨벤션을 비틀어 만든 로맨틱코미디 <투명인간 그리프>

헤어지자는 말을 마친 여자가 남자의 집을 나선다. 굳게 닫힌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여자와 남자가 울음을 터뜨린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됐다. 그때다. 여자가 기대서 있던 문을 스르륵 통과해 문 안쪽으로 넘어진다. 남자가 달려간다. “문을 뚫고 들어왔…, 어떻게?” 놀람과 기쁨에 찬 남자는 여자를 부둥켜안는다. 이별은 되감아지고 사랑도 되찾아진다. 그런데 실은 이 여자, 첫 등장 때부터 벽을 통과해보겠다고 연습 중이었다. “세상의 99%는 빈 공간이에요. 빈 공간이 모인 시간에 정확히 벽을 친다면 통과할 수 있어요.”

언뜻 <초(민망한)능력자들>이 떠오르는 <투명인간 그리프>는 슈퍼히어로물의 컨벤션을 비틀어 만든 로맨틱코미디다. 우선 주인공 그리프(라이언 콴튼)는 초능력자보다 무능력자에 가깝다. 낮에는 만년지각생 왕따 회사원으로 살고, 밤에는 짝퉁 배트맨 슈트를 입고 달리기 연습이나 한다.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지만 되기엔 한참 모자란 그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존재를 뽐내줄 가면보다 숨겨줄 투명망토를 원한다. 그런 그를 조롱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이해하는 유일한 여인이 멜로디(매브 더모디)다. 슬픔(grief)을 달래는 멜로디. 그녀는 그리프에게 4차원으로 이동해 투명인간처럼 행세할 수 있는 우주복을 만들어준다. 물론 현실에서 그리프는 불투명한 남자지만 그녀의 4차원에서 그리프는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남자가 된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남자의 욕망과 투명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의 환상이 이토록 귀엽게 만날 수 있다니. 그 귀여움이 이 영화 최고의 무기다. 특히 애틋할 만큼 어리숙한 그리프가 노란색 코트를 걸칠 때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쭈쭈’ 해주고 싶어진다. 때묻은 세상에 상처받지 않도록 돌봐줘야 할 것 같은 개나리노랑 톤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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