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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헤어초크식의 기괴함 <악질경찰>

노장의 귀환이다. 독일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라며 영화사 책에서 먼저 이름을 접했던 그도 1942년생이니까 어느덧 70살이 됐다. “나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그가 만든 대부분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였고 그나마 2006년 크리스천 베일의 호연이 돋보이는 <레스큐 던>마저 한국에선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했다. <악질경찰>은 1992년 아벨 페라라 감독의 수작 중 하나인 <악질경찰>(Bad Lieutenant)을 떠올리게 하지만 본격적인 리메이크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슷한 캐릭터의 형사가 등장하지만 사건 전개도 다르고 상황 설정도 다르다. 감독은 기본적인 설정만 남겨놓고 그 뼈대 위에 헤어초크만이 만들 수 있는 헤어초크표 <악질경찰>을 재탄생시켰다.

<악질경찰>의 도입부는 감독의 스타일과 그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영화의 첫 장면, 뱀 한 마리가 물 위를 유유히 유영하고 있다. 그 뱀이 활보하고 있는 곳은 강이 아니라 경찰서 안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휩쓴 직후 대자연의 힘 앞에서 시민들을 지켜야 하는 경찰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초토화됐다. ‘위험’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통은 제멋대로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경찰서의 빨간 경고등은 퇴폐한 밤거리의 네온사진처럼 물 위에 비쳐 반짝인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가치와 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자연은 경계를 허물고 구치소까지 물은 차오른다. 형사 테렌스 맥도나(니콜라스 케이지)는 똥물 때문에 명품 팬티를 버리기 싫다며 물속에 갇힌 재소자를 구하는 것을 꺼려하고 그의 목숨을 놓고 동료와 내기를 한다. 이미 기능을 상실한 경찰서의 똥물 속으로 결국 맥도나는 뛰어들고 그는 똥물이 되고 파충류가 된다. 재소자를 구한 공으로 진급까지 하지만 그는 평생 짊어져야 할 요통을 얻었고 고통을 줄이려고 약물에 의존하다 코카인 중독자가 된다. 이후 2시간 동안 영화는 똥물에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통과 마약에 찌든 그는 뱀처럼 흐느적거린다. 그의 일그러지고 얼빠진 듯한 표정과 구부정한 자세,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파충류와 닮았으며 그것은 곧 헤어초크 영화에 나오는 기괴함과 맞닿는다. 많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영화의 기괴함에 동물들이 가지는 위상은 각별하다. <악질경찰>에서도 뱀을 비롯해 악어, 이구아나, 물고기 등이 등장한다. 인간의 영토를 침입한 악어는 차에 치이고 TV에선 소가 인간을 공격하고 물고기는 살해당한 아이의 친구였다. 한술 더 떠 이구아나는 버젓이 촬영장에서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고 자기를 찍는 카메라를 향해 달려든다. 헤어초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줄기차게 던져왔다. 인간사에 무심한 듯 자연에 카메라를 들이댄 근래의 다큐멘터리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우리는 인간의 시점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인간사를 바라보게 된다. 교통사고 장면에서 카메라는 내장이 튀어나온 악어를 보여주다가 하늘로 올라가 시끄러운 인간들의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악어의 시점에서 그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아직도 경찰이세요?”라는 질문에 맥도나는 “물고기도 꿈을 꿀까?”라고 자문한다. 인간만이 꾸는 미래에 대한 허망한 꿈, 인간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스스로 만든 견고한 시스템의 굴레 안에서 허덕거릴 뿐임을 헤어초크는 병든 인간의 타락을 통해 신랄하게 비웃는다. 그리고 마지막 인상적인 맥도나의 웃음을 통해 그러한 조소를 초탈해버린다.

이러한 노장의 노련함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해 되묻는다.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는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서 춤을 추고 그 사이를 이구아나가 걸어간다. 맥도나가 파국으로 치닫던 어느 날 갑자기 그를 곤경에 빠뜨린 고소는 취하되고 돈을 벌고 공을 세우고 진급하며 애인은 임신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려는 순간 마약에 손을 대는 그는 여전하다. 이러한 장면들은 환상이라기보다는 비현실이다. 감독은 비현실적인 장면을 비현실처럼 찍지 않고 현실처럼 찍어버린다. 예를 들면 촬영장에 이구아나를 갖다놓고 그냥 그걸 다큐멘터리처럼 찍어버리는 식이다. 비현실은 균열된 틈을 비집고 나와 오히려 더 현실이 된다. 헤어초크는 능수능란하게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무엇이며 우리가 보고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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