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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는 야구영화 <머니볼>

불이 꺼진 텅 빈 야구장 관중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빌리 빈(브래드 피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다. 그가 귀에 댄 라디오 너머로 2001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즈에 지고 있는 애슬레틱스의 상황이 들린다. 2002년 빈곤 속에서 어렵사리 20연승의 쾌거를 이루기 전이다. <머니볼>은 패자의 적막이 승자의 환호성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유장하게 보여준다. 야구장은 스카우트와 트레이드 비용으로 1억달러 이상을 쓰는 부자 구단들에 4천만달러짜리 구단 애슬레틱스가 맞서 싸우는 전장이 된다. 그 전투를 이끄는 지휘관이 빌리다. 그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부단장으로 기용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펼친다. 두 ‘경영인’이 외모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출루율이나 방어율에 근거해 선수들을 뽑은 결과, 그해에 애슬레틱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낳는다.

혹자들의 평대로 <머니볼>의 빌리는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 저커버그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두편의 각본을 모두 맡은 아론 소킨은 IT계에서 야구계로 무대를 옮겨 또 한명의 CEO형 영웅을 탄생시킨다. 좀더 주목해야 할 재능은 감독 베넷 밀러다. <카포티>에서 살인마를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의 모순 가득한 내면을 밀도 높게 그려냈던 그는 <머니볼>에서도 선수를 거쳐 구단장이 된 인물이 거쳐온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긴밀하게 교차시킨다. 그들의 손에 의해 빌리는 결단의 순간마다 선수 시절 바닥을 쳤던 경험을 곱씹는, 전진과 후진 사이에서 약동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애슬레틱스가 11 대 0으로 이기고 있다가 빌리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11 대 11로 스코어가 수직하강하는 장면은 한 인간의 굴곡을 야구경기의 리듬으로 훌륭히 녹여낸 대목이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없는 야구영화가 있다. <머니볼>은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는 야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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