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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월가를 점령하라 vs. 금송아지를 점령하라

1. 데미언 허스트, 금송아지, 2008. 2. 경찰이 보호하는 월가의 상징, 황소상, 2011. 3. 반금융자본 시위 ‘월가를 점령하라’를 기획한 애드버스터의 시위 홍보 포스터, 2011.

2011년 9월17일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가 격화되자, 금융가의 상징물 황소 동상을 경찰 병력이 경비하고 나섰다. 시위대의 분노가 금융 지구를 대변하는 상징물에 위해를 가할까 우려한 결과다. 어느덧 월가의 황소상은 1% 금융자본의 대표 조형물로 시위대와 경찰 모두가 인정한 꼴이 되었다. 모든 시위의 도화선은 사회 부조리지만 집회를 살찌우는 매개는 문화운동의 개입일 때가 많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유행한 반사회적 낙서문화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전략에서 가져온 것이고, 차가운 정치 구호와 성해방의 따끈한 요구가 나란히 구호에 쓰였다. 시위대/군중의 분산된 시선을 모으는 데 시각예술처럼 적절한 구심점은 없다. 예술은 직설적인 메시지를 유연하게 다듬는 필터링 효과를 지닌다. 구약에 등장하는 금송아지는 군중을 유인하는 시각 상징물로서, 추종자의 종교적 패륜과 속물적 탐욕을 연결짓는 적절한 모티브로 쓰인다. 야훼를 뵈러 시나이 산에 오른 모세의 부재를 틈타 다른 우상을 섬긴 어리석은 대중의 배금주의는 금송아지로 투영되었다. 그러나 소를 숭배 대상으로 삼는 풍조는 구약 이전에도 많은 고대 문화권에서 관찰된다. 역사상 최초의 미술로 거론되는 구석기 시대 라스코 벽화에도 소는 재현되었다. 문명 이전 인류는 야생소의 강인한 생명력에 마법이 개입되었으리라 믿었고, 소를 신성한 동물의 반열에 올렸다. 하지만 인류가 농경시대를 접은 지 이미 오래 지났건만 (황금)소는 여전한 숭배 동물로 인용되고 제작된다.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불붙어 황소상조차 위협받던 9월, 중국 최고 부자 동네인 화시촌에 ‘공중화시촌’(空中華西村)이라 불리는, 세계에서 15번째로 높은 빌딩이 올려졌는데, 건물 내부에 들어선 1t 중량의 24k 황금소가 외신에 공개되었다. 뉴욕 금융가의 내달리는 황소상처럼 중국 부유촌의 ‘진짜 황금’소는 1% 부유층의 과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금송아지 숭배가 신의 징벌을 받았다는 유구한 종교적 교훈도 세속의 탐욕 본능을 가로막을 순 없다.

4. 중국 부자 동네 화시촌의 상징물로 세운 24k 황금소, 2011. 5. 구약의 출애굽기의 한 장면을 묘사한, 푸생 ‘금송아지 숭배’ 1633~4(2011년 7월 누군가에 의해 붉은 스프레이로 훼손됐다). 6. ‘월가를 점령하라.’ 10월9일 시위에서 ‘탐욕’과 ‘그릇된 우상’이라 적힌 황금소 모형을 시위대가 이고 행진한다, 2011.

국제 미술의 스타이자 영국 최고 부자 미술가인 데미언 허스트는 뿔과 발굽에 18k 금박을 입힌 죽은 소를 포름알데히드에 집어넣은 괴상한 설치물을 무려 1030만파운드(약 200억원)의 경매가에 팔아치웠다. 포름알데히드로 채운 유리 입방체 속에 죽은 포유동물을 담근 설치물은 데미언 허스트의 명성을 보장한 초기작의 미적 시도를 계승한 거지만 고대부터 이어진 숭배 아이콘을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데 같은 방법을 동원한 건 금송아지가 거느린 탄탄한 수요가 고정불변이어서다. 별개의 미학적 포석이 깔렸으리라 해석하긴 힘들다. 인류의 본심은 관념신보다 물신/우상을 숭배했고 더욱이 신뢰했으니까.

ps. 월가 시위자의 팻말에 Bullshit!이란 단어가 적혔더라. 소똥? 오 영험한 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