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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감탄할 만한 완성미
안현진(LA 통신원) 2011-11-25

<다운턴 애비>의 줄리언 펠로즈

<다운턴 애비>

전문가 평점은 일반인 평점보다 낮은 게 보통이다. 한데 <LA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USA 투데이> <버라이어티> <보스턴 글로브> 등이 모두 만점을 준 TV시리즈가 있다. 2011년 1월과 10월 미국의 공영방송채널인 <PBS>의 ‘마스터피스’ 프로그램을 통해 시즌1, 2를 방영한 <다운턴 애비>가 그 주인공이다. <다운턴 애비>는 2011년 에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촬영상, 각본상까지 모두 5개 부문을 수상했고, 2011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드라마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실 <다운턴 애비>의 고향은 영국이다. 코너명에 버젓이 ‘미드’라고 써놓고 영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미드의 재미와 만듦새가 조금 주춤하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는 미드나 영드나 똑같이 외화일 뿐이라서 굳이 국적을 구분해 재미있는 시리즈를 소개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운턴 애비>는 1912년의 4월, 타이태닉호의 침몰이 다운턴 저택의 사람들에게 가져온 비극에서 출발한다. 다운턴 저택과 영지의 주인인 그랜섬 백작은 딸만 셋인데, 영지와 저택은 물론 작위까지도 남자에게만 상속이 가능했던 당시의 법에 따라 합당한 상속자와 큰딸 메리를 약혼시켰다. 그런데 그 약혼자가 침몰사고로 실종된 것이다. 저택의 사람들은 메리가 아버지의 재산과 작위까지 물려받을 수 있도록 다음 상속인을 찾아낸다. 그는 중인계급에 변호사인 매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제 손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없는 귀족을 경멸하는 매튜와 그런 태도의 매튜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나름 신여성인 메리의 귀여운 ‘밀당’이, 귀족과 하인으로 양분된 다운턴에서 펼쳐진다. 시청자가 매튜와 메리를 응원할 무렵,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등 시청자와의 ‘밀당’에도 능숙한 <다운턴 애비>의 작가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의 시나리오를 쓴 줄리언 펠로즈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로 30년을 살다, 생애 첫 시나리오 <고스포드 파크>로 52살에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줄리언 펠로즈는, 그 뒤 <베니티 페어> <투어리스트> 등의 각본가로 꾸준히 활동했고, 2011년 <다운턴 애비>로 또 한번 저력을 확인시켰다. “(저택의) 위층은 제인 오스틴 소설과 아래층은 <고스포드 파크>와 닮았다”고 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은 작가의 장기가 <다운턴 애비>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잘 요약한다. 저택의 위층과 아래층으로 구분된 두 계급의 일상에 대한 디테일이 전쟁, 계급, 민주주의, 페미니즘 등 격변을 앞두었던 시대상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특히 흥미로운 면은 선악, 귀천, 신구, 남녀 등 선 하나로는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 속 깊은 다운턴의 사람들이다. 맹목적으로 한쪽만 지지하는 캐릭터로 넘치는 미드에 식상한 시청자가 반색할 만큼 잘 쓰여졌고, 재단한 듯 잘 만들어졌다. 무대와 문학 작품으로 다져진 영국 배우들의 앙상블이야 언제나처럼 좋지만 두 계급에 공평하게 드라마를 분배하고, 모든 캐릭터를 공정하게 보살핀 작가야말로 <다운턴 애비>가 이룬 완성미의 일등공신이란 생각이 든다.

2011년 4월, 펠로즈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준비하는 다음 TV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다. “그동안 타이태닉 영화들은 모두 1등 아니면 3등 선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펠로즈의 시선이 닿은 곳은 보일러실, 주방 등 호화 여객선을 관리했던 ‘타이태닉의 아래층’ 2등선실의 사람들이다. “1차대전 이전의 삶은 고요하고, 자긍심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타이태닉호의 침몰과 함께 그중 많은 것이 바뀌었다. 침몰 100주년에 그 사실을 기리는 작업이 없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다운턴 애비>의 시작으로 돌아간 펠로즈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