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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아직은) 사랑할 수 없는 남자

KBS2TV <브레인>의 주인공,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에 대하여

천하대학병원 신경외과를 무대로 한 KBS2TV의 의학드라마 <브레인>은 머리뼈를 열고 뇌를 들여다본다. 신경외과에는 응급수술을 요하는 중환자의 비중이 높은 만큼 의사들도 생과 사를 오가는 현장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환자를 잃을 수도 있어!” 뇌수술신의 생경한 공포에 질려 있다가 문득 저 대사가 여러 차례 귀에 들어왔다. 환자를 잃는다? 의사가 환자를 잃는 경우는 두 가지다. 환자가 병원을 떠나거나 혹은 사망하거나. 물론 의사가 환자가 완치되는 상황을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일 리 없다. 저 의사가 에둘러 말하는 것은 환자의 죽음이다. 많은 의학드라마의 의사들이 위급 상황마다 “환자가 죽을 수도 있어!”라고 외치던 것을 기억해보면 <브레인>의 저 대사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조차 죽음을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는, 의사의 완강한 심리 상태가 읽힌다. 행여 환자 귀에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입 단속하는 의사들의 직업윤리 혹은 부정 탈지 모르니 수술방에선 죽는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식의 금기의 반영일지도 모르지.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자면 내 생명을 구하려는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입에 담는 의사보다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할 환자의 공포를 헤아리는 의사를 더 의지할 것 같다.

자 그럼 다시. 내가 환자라면 <브레인>의 주연 신하균이 연기하는 신경외과 2년차 펠로(전임의) 이강훈에게 머리를 맡기고 의지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조교수 자리를 노리는 굉장한 실력자라도 절대 사양이다. 앞서 언급한 말싸움은 환자의 머리 뚜껑을 열어놓은 수술방에서 벌어진 일이다. 바라건대 내게는 제발 저런 엿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차라리 ‘국보소녀’의 <두근두근>을 틀어다오. 자칫 집도의가 리듬을 타면 어쩌나 소름이 쫙 돋지만…. 수술방에 들이닥쳐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고 고함을 치는 의사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강훈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수술 실력도 뛰어나지만 성격에 결함이 큰 인물이다. 삐뚤어진 심성 때문에 수술할 때 평정심을 잃기도 하고 부유한 집에서 자란 동료를 누르고 싶은 호승심에 판단이 흐려지기도 한다. 전공의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다가 골목대장놀음 한다고 비웃음을 사고, 그를 비웃었던 교수에게 줄을 대야 할 일이 생기자 섬뜩할 만치 어색한 미소로 다가가 아첨하다 개망신을 당한다. <브레인>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남자를 어쩔 셈인가.

열쇠는 앞서 수술방에서 이강훈과 설전을 벌였던 신경외과의가 쥐고 있다. 이강훈과 정반대의 노선을 가는 인물로 병원 내 권력관계에 초연하고 극성스러울 정도로 환자를 생각하는 천재 신경외과 교수 김상철(정진영). 이강훈의 얕은 수를 간파하고 경멸하던 그가 마음을 바꾸고 이강훈을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드라마의 큰 골격이다. 그가 이강훈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의 자신과 꼭 닮은 교만한 모습 때문이며 같은 이유로 저 결함 많은 인간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평정심을 잃고 분노할 때도 “환자를 잃을 수도 있어!”라고 완곡하게 말하는, 죽음이란 단어의 공포를 헤아리는 의사.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환자에게 상냥한 그의 모습도 젊은 날의 모습에 대한 참회의 결과물이라면,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튀는 모난 돌 이강훈도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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