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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김주혁 때문에 죽네 죽어♡

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의 ‘놀 줄 아는 배우’ 김주혁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와 상관없이 오로지 배우의 비주얼에 혹할 될 때가 자주 아, 아니 가∼끔 있다. 올해 나에게 그랬던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적과의 동침>이었다. 이야기 자체는 <웰컴 투 동막골>의 코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지적인 인민군 장교 역의 김주혁은 군복 피트(fit)가 딱 떨어지는 늘씬한 체격에 피로마저 감미로워 보이는 눈가의 그늘, ‘댄디’라는 단어 외에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로 두 시간 내내 나를 홀렸다. 대학생 때 영화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그를 실제로 본 뒤 “그렇게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며 찬사를 늘어놓던 심정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티가 그려진 분홍 손거울을 들고 면도를 하는 김주혁의 날렵한 턱선 사진으로 홍보를 시작했던 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에 대한 기대는 그와 별개의 문제였다. 내털리 포트먼이 갱스터 랩으로 19금 욕설을 퍼붓고, 검은 튀튀(발레를 할 때 입는 주름 잡힌 스커트)를 입은 짐 캐리가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며 블랙 스완을 연기하는 이 강도 높은 쇼가 한국에 들어와 ‘국민 정서’에 눈높이를 맞추면 얼마나 얌전, 아니 지루해질 것인가. 게다가 첫회 호스트가 이 화보 같은 남자라니 대체 ‘돌아이 짓’은 누가 할 것인가. 아무리 장진 감독이 연출하는 쇼라 해도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더란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깔끔한 차림새로 등장해 “MC도 처음, 생방송도 처음”이라며 엄살을 떨던 김주혁이 그럴 줄은 몰랐다. 보이지 않는 딸의 존재를 믿는 여자 환자(장영남)와 승강이를 벌이는 정신과 의사, 화장실에서 처절하게 농락당하는 운 나쁜 남자, 퀴즈쇼에 출연해 “비비드한 레드 컬러에 블랙 도트가 포인트”(무당벌레), “메뚜기보다는 좀더 엣지있고 하이웨스트에 스키니한 피트감”(사마귀) 따위 ‘패션 피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이 디자이너까지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그는 그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배우였다. ‘간접광고의 진수’라는 제목의 콩트에서 “사채라니, 그건 캐시 앤 머니야! 법정 최고금리 연 39%를 넘지 않는 합법적인 제3금융!”이라며 ‘이지적’의 ‘ㅇ’도 없는 장교를 연기하던 그가 스튜디오로 올라와 “예전에 출연할 뻔했던 작품의 오디션 영상을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는 심지어 ‘과거 영상이라니, 너무 안일하잖아!’라며 깜박 속았을 정도다. 그리고 김주혁이 탁자 위에서 팽이를 후려치며 <인셉션>의 오디션을 재연하고, <아저씨> 시나리오를 거만하게 훑어본 뒤 “이런 건 워… 워… 원빈? 걔나 하라고 해” 하더니 얼굴에 새파란 칠을 한 채 나비족 흉내를 내는 자신의 오디션 영상을 보며 “<아바타>는 정말 아쉬워요”라 끅끅거리던 순간 김주혁도 울고 나도 울었다. 웃겨서.

그래서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해 “구로동에서 휴대폰 대리점 운영하는 김주발씨”의 경박함까지 마음껏 표현한 이 배우와 나는 새로운 사랑에 (혼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영화 시상식에서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즐기긴커녕 어찌할 바 모르고 굳은 표정으로 간신히 박수만 칠 만큼 점잖은, 혹은 수줍음 많은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앞으로 좀더 보고 싶다. 풍자와 캐릭터 플레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묘미를 보여주는 데 능한 장진 감독이라면 그들의 커리어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대에서 좀 ‘놀 줄 아는’ 배우 여러분, 겁내지 말고 나와주시길 바란다. 안 하던 짓 한번 한다고 갑자기 광고 떨어지지 않는다. 아, <SNL 코리아>에서는 소중한 호스트더러 “광고 하나 찍은 거 없다”며 ‘디스’하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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