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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지적인 괴물’을 만나보시라

<BBC 시절의 켄 러셀> Ken Russell at the BBC(1962~1968)

감독 켄 러셀 상영시간 409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 음성포맷 DD 2.0 영어 자막 영어 / 출시사 BBC비디오 & 워너(미국, 3장) 화질 ★★★ / 음질 ★★★ / 부록 ★★★★

BFI의 내년 초 DVD 라인업에는 켄 러셀의 <악령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 X등급을 받은 오리지널 버전을 수록한 이 DVD는 부록으로 제작다큐멘터리, 단편영화 및 음성해설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DVD가 나오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령들>은 지금껏 공식적으로 DVD화되지 않았다(외국 온라인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DVD는 조악한 화질의 불법복제물이다). 영국영화 역사상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를 드디어 DVD로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러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무용수를 꿈꾸다 군인과 사진가를 거쳐 영화에 발을 들어놓으며 논란의 인물로 명성을 떨친 그가 지난 11월27일, 84년의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몇편의 호러와 스릴러로 그나마 알려진 러셀의 영화 세계는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색적인 언어로만 러셀의 영화를 평가하면 안되는 것이, 러셀은 영화사를 장식한 ‘지적인 괴물’ 가운데 최후의 생존자였다. 영화의 인습을 파괴하며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주제를 탐닉했으나 풍부한 문화적 양식을 바탕으로 창작에 임한 인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러셀의 죽음 앞에서 ‘논쟁’이나 ‘광기’ 같은 시시한 단어를 재탕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BBC 시절의 켄 러셀>은 러셀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찍은 방송 프로그램 중 여섯편- <엘가> <드뷔시 필름> <앙리 루소: 일요일의 화가> <이사도라> <단테의 지옥> <여름의 노래>- 을 모은 작품집이다. 예전에 BFI에서 출시한 <엘가>와 <여름의 노래>의 DVD가 현재 고가로 거래된다는 걸 감안하면, 아주 훌륭한 염가 박스세트다. 1959년, 아마추어 영화 세편을 찍었을 뿐인 러셀은 존 슐레진저의 후임으로 <BBC>의 예술프로그램 <모니터>(이후 ‘옴니버스’란 이름으로 바뀐다)에 참여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사이에 선 이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평범한 연대기나 고작해야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는 싸구려 영화들과 급을 달리한다. 중심인물의 독백과 진행자의 간결한 내레이션을 기본으로, 인물의 대사를 제거한 재연 영상을 경쾌한 리듬으로 모자이크하던 초기의 경향은 후반으로 가면서 드라마의 틀을 갖추게 된다. ‘순회하는 전도사’의 마음으로 작업했다는 러셀이 중요시한 건 이미지였다. 인물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강렬하고 시적인 이미지로 인물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말을 타고 언덕에 우뚝 선 소년 엘가, 해먹에 누워 숲의 목신으로 행세하는 드뷔시, 그림을 리어카에 싣고 독립화가전에 출품하러 가는 루소, 베토벤의 <합창>에 맞춰 500명의 아이와 벌판을 달리는 이사도라 던컨, 운명적 사랑을 나눈 여인의 관에서 시집을 꺼내는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델리우스의 교향시 <여름의 노래>와 짝을 이룬 거대한 바다’는 그러한 이미지를 대표한다. 연출은 물론 각본, 제작을 겸한 러셀은 공히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시간을 사는 인물들을 빌려 근대의 고통을 말한다. 엘가는 국가와 대중의 요구에 환멸을 느끼고, 무책임한 드뷔시는 노동의 윤리와 충돌하고, 유파에 속하지 않은 루소는 멸시를 당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이사도라는 관습에 저항하고, 로제티의 저주받은 사랑은 파멸을 부르고, 델리우스는 힘을 잃은 육체 때문에 신음한다. 이 시기의 작품을 시작으로 러셀은 이단아로 불린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창작물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러셀은 그들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DVD의 부록인 인터뷰(30분), 메이킹필름(30분)도 소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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