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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talk] 다큐의 추한 이면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오계옥 2011-12-27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감독

인도 콜카타의 인력거꾼들은 홑겹의 민소매 셔츠가 땀에 흥건히 젖을 때까지 뛰고 또 뛴다. 그들을 따라 이성규 감독도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그는 <오래된 인력거>에 인력거꾼들의 땀과 눈물, 꿈과 절망을 담아냈다. 시작은 1999년이었다. 10년간 찍은 분량만 2만분이 넘었다. 그로부터 한편의 드라마가 건져 올려졌다.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로 꼽히는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와 캐나다 핫독스다큐멘터리영화제로부터 초청도 받았다. “현지인과 똑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그의 원칙이 낳은 값진 결과물이었다.

-오래 걸린 작업이었던 만큼 고생도 심했겠다. =(틀니를 들어 보이며) 봐라. (웃음) 인도나 네팔은 물이 석회질이라 치아가 잘 녹는다. 지난 10년간 길게는 1년6개월, 짧게는 3개월씩 인도에서 인도인처럼 살다 보니 풍치가 오더라.

-왜 인도를 택했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TV다큐는 해외출장 1주일 가서 찍은 분량으로 1~2주 편집해서 50분짜리를 만들어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면 내가 내용을 이해할 때쯤에는 이미 촬영이 끝나 있다. 그래서 1999년에 <달팽이의 별>의 이승준 감독이랑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다큐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는데 돈이 없더라. 인도에 가면 300달러로 한달간 머물면서 찍을 수 있겠다 싶어 떠났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처음엔 마더 테레사 수녀원의 자원봉사자들을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한 히스테리 환자를 만났다. 그게 전환점이 됐다. 비하르 출신으로 카스트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깊은 환자였는데, 그의 이야기를 번역해줄 비하르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샬림도 만났다. 사연을 파고들다 보니 <보이지 않는 전쟁>(2000)이 나왔다. 그 뒤로 인도에 관한 크고 작은 다큐를 13편 더 만들었다.

-<오래된 인력거>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시점은 언젠가. =2006년쯤. 샬림과 모하메드와는 이미 친했고, 마노즈는 2009년에 새로 찾아낸 인물이다.

-마노즈와의 인연이 극적이다. =비하르 출신이라기에 나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 조그만 마을에 한 외국인이 세번이나 다녀갔으면 기억 못할 리가 없으니까. 나중에야 “과자를 준 사람이 네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형이었구나”라며 기억해내더라. 그래서 예전 기록을 뒤져보니 거기 마노즈가 있었다.

-마노즈는 끝내 마음을 열지 못했나. =맨 정신일 때는 아예 입을 안 열었다. 인터뷰 장면은 술에 꽤 취한 상태일 때 딴 것들이고. 카스트 전쟁 때 아버지가 지주에게 살해당했으니 상처가 깊었다. 지금은 고향에서 결혼해 잘 살고 있지만.

-연출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장면도 있더라. =인력거의 행동반경이 1km도 안된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다니는 단골들도 있고. 계산이 나오지. 미리 담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거나 앞을 지나는 전차를 잡아타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TV다큐의 포맷을 사용했다. =국내 개봉을 위해 일부러 설명을 많이 첨가했다. 해외 영화제에 출품한 버전에는 내레이션도 없었다. <울지마 톤즈>나 <워낭소리>나 다 전형적인 TV다큐잖나.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어딜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외수씨에게 내레이션을 맡긴 이유도 비슷한가. =대중성을 고려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연도 깊다. 고향이 춘천인데 1973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창촌 부근에서 자주 놀았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모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했다. 그분이 이외수 선생이셨다.

-마지막 장면은 불편하다. 샬림이 찍지 말라는 데도 끝까지, 심지어 클로즈업으로까지 찍었다.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사체인 주인공과 촬영자가 충돌하지 않는 다큐는 한편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끈하게 봉합된 다큐를 원한다. 암스테르담영화제에서는 둘 사이의 우정으로 마무리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충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거부했다. 다큐의 추한 이면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언제 또 인도에 가나. =당분간은 못 갈 것 같다. 티베트의 동자승, 몽골의 유목민 소년에 관한 다큐를 준비 중이다. 제작에도 많이 참여할 생각이고. 더 많은 후배들이 다큐에 뛰어들 수 있도록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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