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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의 시네마나우] 필름의 연장선에서 비디오 작업하기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세편의 신작 읽기

다니엘 위예와 장-마리 스트라우브(왼쪽부터).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고(故) 다니엘 위예(1936~2006)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종종 이들에게서 영화사상 희유의 미학적 순수주의자의 모습을 끌어내곤 하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는 좀 따져볼 일이지만, 뺄셈밖에는 알지 못하는 순수에의 열정(미니멀리즘)이 이들의 영화와 무관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위예 사후 최근 3년간 스트라우브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지지자들을 당혹게 할 장치들- 그 자체로는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새로울 바 없지만 기왕의 스트라우브-위예적 형식에 이례적으로 삽입, 조율됨으로써 낯설고 새로운 효과를 얻게 된- 이 적잖이 눈에 띈다.

16mm나 35mm 필름이 아닌 비디오로 촬영된 두편의 스트라우브 영화(<조아생 가티>와 <코르네유-브레히트>)가 처음 발표된 2009년 당시만 해도 이것이 그의 ‘비디오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되리라고는 단정내리기 힘들었고 <조아생 가티>의 16:9 화면비- 이전까지 스트라우브는 언제나 4:3 화면비로 작업해왔다- 는 러닝타임이 2분도 되지 않는 이 ‘팸플릿 영화’에서만 한번 시험해본 일탈 정도로 간주되었다(같은 해, 항상 필름으로 작업해왔던 미국의 대표적 아방가르드 감독 제임스 베닝은 소니 EX-3 카메라로 촬영한 그의 첫 HD 장편 <루르>를 발표했다). 하지만 2009년 여름에 촬영된 <오 지고의 빛이여>가 이듬해 첫 공개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스트라우브가 전혀 예기치 못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16:9 화면비의 영화일 뿐 아니라, 스트라우브의 이탈리아어 영화 가운데서는 엘리오 비토리니와 체사레 파베세 같은 현대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고전문학 텍스트(여기서는 단테의 <신곡: 천국편>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33곡)를 취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시칠리아!>(1999)에서부터 스트라우브-위예는 영화 촬영에 앞서 동일한 대본과 배우들로 사전 무대 공연(겸 리허설)을 갖는 방식을 고수해왔는데, <오 지고의 빛이여>에선 이 과정을 뒤바꿔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 무대공연을 갖고 객석의 관객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올해 공개된 세편의 신작은 스트라우브가 비디오 작업을 이전의 필름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고려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작된 <후예>는 (모리스 바레스의 원작을 택한 것이나 그 주제에 있어서도) <로트링겐!>(1994)의 ‘자매영화’라 할 만한데, 여기서 그는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는 핸드헬드 촬영을 시도했다. <위로할 수 없는 것>은 <구름에서 저항까지>(1979)에서 시작해 <그들의 이런 만남들>(2005), <아르테미스의 무릎>(2008), <마녀들>(2009)로 이어져 온 파베세 원작 <레우코와의 대화> 시리즈의 첫 비디오 버전이다. 마지막으로, 문학 텍스트를 당대의 정치적 상황 속에 재기입하는 <안티고네>(1991)의 방식은 <코르네유-브레히트>와 동일한 공간에서 촬영된 스트라우브적 실내극 <재칼과 아랍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스트라우브는 <오 지고의 빛이여>에서 처음 등장했던 이탈리아 문학교수 조르조 파세로네를 <재칼과 아랍인>에서 아랍인 역으로 다시 등장시키고 있는데, 파세로네가 <천개의 고원>의 이탈리아어판 번역자이며 들뢰즈/가타리의 이 저서에서 카프카의 단편 <재칼과 아랍인>이 군중(영토성)/무리(탈영토성)의 우화로서 재독되고 있음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카프카의 단편에서 일체의 서술을 발라내고 대화만을 추출해 기묘하게 당대 유럽과 아랍 사이의 정치학을 환기시키는 쪽으로 독해해내는 것이 스트라우브의 ‘의도’였다면(물론, 가정이다), 오히려 이 작품 자체는 그의 독해와 들뢰즈/가타리의 독해 및 그들이 비판한 정신분석학적 독해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귀결되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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