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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의 진부함과 캐릭터의 밋밋함 <원더풀 라디오>
송경원 2012-01-04

라디오는 꿈꾸는 상자다. 이야기 그 자체를 실어 나르는 라디오는 짧은 호흡으로 그 어떤 매체보다 깊은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도 라디오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라디오 방송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응당 그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대하게 마련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나 아쉽게도 <원더풀 라디오>에는 정작 ‘라디오’가 안 보인다. 대신 돌다리를 연신 두들기며 안전한 로맨틱코미디의 길을 걷는데 이 행보가 참으로 지루하다.

한때 인기 아이돌 그룹 퍼플의 전 멤버였던 신진아(이민정). 라디오 프로그램 ‘원더풀 라디오’의 DJ만이 유일한 방송일인 그녀지만 그나마 청취율마저 바닥이다. 방송국에서는 임신한 PD가 휴가를 낸 사이 청취율을 끌어올리고자 새로운 PD 재혁(이정진)을 투입한다. 까도남 PD 재혁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들볶이던 신진아는 청취자가 자신의 사연을 직접 노래로 부르는 ‘그대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새로운 코너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덕분에 프로그램은 대박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나간 과거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원더풀 라디오’도 위기를 맞는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최고의 사랑>이 떠올라도 어쩔 수 없다. 큰 줄기만 놓고 볼 때 캐릭터와 설정, 갈등해소 과정이 상당 부분 유사하다. 그러나 문제는 익숙하고 유사한 뼈대가 아니라 사이를 메우고 있는 에피소드의 진부함과 캐릭터의 밋밋함이다. ‘라디오’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살렸다면 충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지만 <원더풀 라디오>는 상투적이고 안전한 길을 답습한다. 물론 신진아 역의 이민정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매니저 역의 이광수와의 호흡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교하게 엮이지 않는 일회성 웃음조각들로 두 시간을 버텨내기는 다소 버겁다. 이를 메우려 장항준 감독을 비롯해 컬투, 이승환 등 수많은 카메오를 투입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과잉된 애드리브와 낯간지러운 개그코드가 도리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악수로 작용한다.

의외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사연들이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군인, 택시운전사, 여고생의 라디오 사연들은 긴 설명이 필요없는 즉효성 최루탄을 선사하며 관객의 눈물을 훔친다. 맥락을 생략한 채 짧은 서사로도 작동하는 이같은 최루성 코드들은 라디오 매체 특유의 힘을 잘 보여주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춘다. 아이러니하게도 3분짜리 사연에 눈시울이 젖는 만큼 2시간의 드라마가 주는 허무함은 더욱 짙어지는 것이다. 이민정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신진아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까닭에(심지어 상대역인 재혁은 존재감마저 희미하다) 로맨스 또한 공감이 쉽지 않다. 라디오 방송이 주제인데도 듣는 즐거움도 그리 크지 않다. <두시탈출 컬투쇼>의 현 PD가 각본을 맡았던 만큼 라디오라는 소재의 매력을 좀더 파고들지 못한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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