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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고 간결한 형식과 폭력적 억압에 관한 고찰 <송곳니>

바다에 앉아 있자니, 소풍 바닥에 놓인 좀비 두 송이가 보여요. 수수께끼도, 일부러 어법을 흐린 시 구절도 아니다. <송곳니>의 가족에게는 이 괴상한 문장이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다. 이들은 수영장과 넓은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살고 있다. 공장 관리자인 아버지(크리스토스 스테르기오글루)만 차를 몰고 높은 담장 밖을 넘나들 뿐이다. 그는 아내(미셀 발리)와 함께 언어와 정보를 조작하며, 성인이 다 된 자녀들의 지식을 통제한다. 이 때문에 안락의자를 바다로, 건축 재료를 소풍으로, 작고 노란 꽃을 좀비라 부르며, 전화를 달라는 부탁에 소금을 건네는 식의 상황이 부조리극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이 폐쇄적인 공간에도 고정적인 방문객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공장의 경비원 크리스티나(아나 칼라이치도)를 집 안에 들이고, 그녀는 외부 세계에 호기심을 보이는 첫째 딸(아게리키 파루리아)과 거래를 시작한다. 잔잔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세 남매의 이상행동이 불거질 때 즈음, 부모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 엉뚱한 가족의 이야기는 점점 잔혹해진다.

2009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한 <송곳니>는 억압과 기만의 기제를 갖고 움직이는 소세계에 대한 정치적 우화다. 지오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언급대로, “지도자들과 거대 미디어가 어떻게 진실로부터 국민들을 고립시키며 단편적인 지식만을 주입하는가”의 문제가 가족의 권력 관계를 통해 은유된다. 아버지는 고양이를 위협적인 존재로 둔갑시켜 자식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조장하고, 일부러 피칠갑을 하고는 외부 세계의 위험성을 과장한다. 그는 훈련 결과와 충성도에 따라 특권을 주는 등 회유와 협박으로 능란하게 세 남매를 통제한다. 그에 반해 자식들은 철저히 무지하며 무능하다. 이들은 모형 비행기가 담장 밖에 떨어져도 그것을 줍기 위해 단 몇 발자국을 움직이지 못하며, 송곳니가 빠져야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규칙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유치한 트릭에도 쉽게 굴복하는 이들의 모습은 때로 실소를 자아내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속임수 앞에서도 실제 현실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돌이켜본다면 그 웃음이 남긴 잔상은 사뭇 서늘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방 안에서 은밀히 섹스를 한다. 그리고는 잠시 뒤 잦아들었던 음악이 다시 확장되면서 남매가 헝겊으로 눈을 가린 채 훈련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눈을 가리지 않았을 때조차 줄곧 진실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심리를 정의할 마땅한 단어도 모른 채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 오직 서로에 대한 폭력과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현실에 대한 진통을 드러낼 뿐이다. 이들의 막연한 무력감은 화면 구성을 통해서도 암시된다. <송곳니>에는 신체의 일부만 드러낸 숏이 유독 많다. 화면 한쪽에 어깨나 뒤통수만을 걸치고 있던 인물이 한참 뒤 화면 중앙에 나타나 급작스런 동작을 행하는 패턴도 이어진다. 그동안 카메라는 어딘가 잘리고 균형이 맞지 않는 공간을 가만히 응시한다.

정적이고 간결한 형식과 폭력적 억압에 관한 고찰. 굳이 비교하자면 <송곳니>는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송곳니>의 인물들은 <퍼니 게임> 같은 통제 불능의 불안 속에서 <하얀 리본>의 선택으로 몰아진다. 그러나 하네케의 영화는 일상의 언저리에서 그 일상성을 놓치지 않은 채 정치적인 메시지를 알레고리로 담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이 현실감있게 다가오면서도 그 이상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에 반해 <송곳니>의 이야기는 좀더 인위적으로 구성된 느낌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와 인물들의 행위도 그 상징적인 함의를 매우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편이며 그마저 감독의 머릿속에서 미리 계산되어 연역적으로 주어진 듯하다. 그러다보니 큰딸의 마지막 결단도 영화가 의도한 폭발적인 힘을 발산하지는 못한다. 이 결정적인 장면에서도 카타르시스나 통렬한 비애보다는 자극과 선정, 그것도 매우 추상적인 선정성이 앞선다. 우울하고도 기괴한 시대의 자화상을 다소 기계적인 퍼펫쇼로 연출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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