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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철저한 1인 영화제작으로 만들어진 <나는 네가다르 자말, 나는 서부영화를 만든다>의 사례

<나는 네가다르 자말, 나는 서부영화를 만든다>의 감독 캄란 헤이다리(맨 앞)와 영화 속 감독 네가다르 자말(맨 앞에서 두 번째).

영화제작의 영역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 8mm영화에서부터 집단제작, 최근에는 퍼블릭 액세스 개념의 확산에 따라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활발한 제작교육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이러한 일반 대중의 영화 만들기는 대부분 영화운동 차원에서 전문가에 의한 교육, 상영을 위한 플랫폼 확보와 같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장르별로는 다큐멘터리가 가장 보편적이고, 극영화도 대부분 단편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이러한 현상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완성된 캄란 헤이다리 감독(이란)의 다큐멘터리 <나는 네가다르 자말, 나는 서부영화를 만든다>(이하 <나는>)에서 소개되고 있는 네가다르 자말의 영화는 앞서의 일반적인 시민영화와는 성향이 다르다. 그의 작품은 아마추어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문제의식도 없다. 그는 단지 영화만을 사랑해서 ‘1인 영화제작’을 고집한다. 그는 영화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며,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미리 확보된 공공 상영공간이나 배급망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장편 서부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35년간 19편의 극영화를 만들었으며, 대부분은 서부영화이지만 타잔영화도 있다(이란에서 타잔영화라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는 좀 유별난 영화마니아로 치부할 수도 있다. 혼자서 극영화를 만들다 보니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삶과 영화제작에 동참하는 주변 마을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자말은 서부영화 마니아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직접 서부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8mm카메라를 구입해 극영화를 찍기 시작했다(지금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었다). 의상은 시장에서 할리우드의 서부극에서 보았던 그것과 유사한 옷들을 구하고, 이웃 주민들을 배우로 기용한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자말은 닭 파는 집을 찾아가 닭의 깃털을 구한다. 용도는? 인디언의 머리장식에 쓰기 위해서다.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출연을 요청하면(대부분 중?장년 남자) 많은 사람들이 집사람에게 혼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자말의 영화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한 할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이 늘 죽는 역할만 했다며, 보안관을 시켜달라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자말과 아내와의 관계다. 영화를 만든답시고 집안 살림을 내팽개치는 남편을 그의 아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아내는 이혼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자말의 영화 만들기는 계속된다. 결국 영화는 완성되지만 그의 영화를 틀 공간은 없다. 그래서 그는 동네 골목길 한복판에 자리한 남의 집 담벼락에 하얀 천을 걸어두고 영화를 상영한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영화를 보다가 재미없다며 떠나지만 어쨌건 상영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란에는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영화광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모슬렘 만수리의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영화천국>(2003)은 검열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체포되면서도 산간 마을에서 1인 영화를 만드는 알리 마티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만의 영화천국>에서도 동네 골목길이 극장, 마을 사람들이 관객이다. 심지어 마티니는 상영이 끝난 뒤 시상식도 한다. 감독상은 물론 자신이 받는다.

자말이나 마티니의 영화에서 메시지나 철학, 미학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품 수준에 대해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과 과정, 그리고 티격태격하며 그들을 돕는 마을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심성이다.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마을이? 마치 우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그들의 영화는 아름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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