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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치정과 불륜의 무대

김기영의 <하녀>에 등장하는 이층 양옥에서 한 중류 계층 가족의 욕망을 읽다

<하녀>

늦게 퇴근한 모양이다. 4명의 가족이 모인 2층의 거실, 남자는 신문을 읽으며 혼자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다. 탁자 위에는 탁자보가 씌워져 있고, 그 위에는 음식들이 간단하게 놓여 있다. 의자의 등받이는 서양인 체형에 맞춘 것인지 담벼락처럼 드높다. 여자는 남편과 마주 보지 않고 그의 뒤편 피아노 의자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바느질로 수를 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녀의 뒤로는 음악선생인 남편이 이사 직전에 마련했던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는 미니어처 인형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그 양편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모형이 그 인형들을 호위하고 있고, 바로 위의 벽면에는 두개의 탈바가지가 거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편, 짙은 회색빛의 노출 벽면에는 원형의 금속 공예 장식물이 각각 두개의 노리개를 매단 채 걸려 있고, 커튼으로 감싼 듯 보이는 흰색 벽면에는 네개의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피아노와 탁자가 함께 놓인 비좁은 공간에 벽면마저 산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이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발코니 창 앞의 공간은 아이들 차지다. 두 남매는 그곳에 앉은뱅이 탁자를 놓고 실뜨기에 빠져 있다.

밤이 깊어지면, 이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것이며, 여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1층 거실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남은 일거리를 마무리할 것이고, 남자는 2층에 남아 내일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여자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보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삐거덕대며 비명을 토해낼 것만 같은 나무계단이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랑 세개의 백열전구로 복도를 밝히면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집에서 현관문을 제외한 모든 문은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이다. 문이 닫히면 밀실이 되지만 문이 열리면 열린 공간이 되는 입식 방들의 기묘한 구조.

이제 좀더 시간이 지나면, 1층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들어와 흑백의 거친 빛 입자를 분사하면서 금발의 팔등신 미인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2층의 빈방에는 하녀가 들어와 집수리와 이사로 심약해진 여자를 도와서 가사를 돌볼 것이다. 이 가족 앞에는 4 . 19혁명과 5 . 16쿠데타 같은 정치적 격변이 기다리고 있지만, 청년기에 두번의 전쟁을 경험한 남자가 하녀와 정분나는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혹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오는 젊은 여성들과 바람 피우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낡은 건물이긴 하지만 새로 수리한 이층 양옥으로 이사해 중류 계층에 진입한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취미로 유명했던 1919년생 감독이 1923년생 배우를 남자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서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들의 유년기 기억에 남아 있던 일부다처제의 봉건 잔재는 이제 치정극의 내적인 동인으로 거듭날 것이며, 그들을 매혹할 젊은 여자들은 상행선 열차를 타고 계속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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