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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한식, 옆에서 볼까? 아래서 볼까?

올리브TV <김치 크로니클>이 주는 색다른 맛‘보는’ 재미

육식과 폭식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미식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배고프고 힘들 때 생각나는 최고의 만찬이 김밥천국 김밥과 라볶이인 걸 보면 상당히 싸게 먹히는 입을 가진 셈이다. 그럼에도 두어해 전 상하이 여행을 갔을 때 미식가인 친구들 손에 이끌려 별이 몇개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발을 들인 적이 있다. 맛은 있으나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먹고 또 먹어도 다음 코스가 나와 호흡 곤란을 유발하던 프렌치 디너에 대한 가장 뚜렷한 기억은 푸아그라를 먹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정도다.

그러니까 사실 그 레스토랑의 대표인 유명 셰프 장 조지가 출연한다는 것 때문에 최근 올리브TV에서 방송 중인 <김치 크로니클>을 보기 시작했던 건 아니다. 라면 물을 맞추는 것 외에 요리라고는 연간 행사에, 그 결과 또한 대재앙에 가까운 내게는 손닿는 화분의 허브 잎을 뚝뚝 따서 팬에 넣는 제이미 올리버든, 유려한 손놀림을 지닌 유학파 훈남 셰프가 주인공이든, 대저 음식 프로그램이란 봐봤자 배만 고프고 속만 쓰린 염장 방송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스맨> 시리즈의 열성팬인 나로선 ‘맨 중의 맨’ 휴 잭맨이 이 한국 음식 다큐멘터리에 나온다는 소식에 파닥파닥 낚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김치 크로니클>은 꽤 보는 맛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 최고의 셰프가 된 장 조지,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마르자 부부의 한국 여행은 식도락 탐험이자 생소한 문화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르자와 함께 살게 된 첫날, 냉장고를 열었을 때 시체가 들어 있는 줄 알았다”는 농담과 함께 김치 냄새에 대한 첫인상을 떠올리는 장 조지는 소주와 화이트 와인을 요리에 사용하고 제주의 해녀들과 함께 바다에 뛰어든다. 한국에서 이방인인 동시에 음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마르자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기억이 적은 자신과 달리 딸이 한국에서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들 부부의 친한 이웃이라는 인연으로 부인과 함께 종종 등장하는 휴 잭맨은 아버지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인연을 언급하며 ‘매운 음식을 두려워하는 울버린’의 귀여운 면모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만듦새는 “국수는 소리내어 먹어야 한다”는 팁 등 몇 가지 잘못된 정보 전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훌륭하다. 해외에서 제작되고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이지만 외국인들이 놓치기 쉬운 길거리 음식, 기사식당, 수산시장 등 다양한 식문화의 장을 경험하게 해주는 구성도 생동감있다.

다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홍보하거나 청계천 재개발에 대해 “환경친화적 도시 디자인 계획의 드문 사례”라고 칭찬하는 등 생뚱맞은 ‘깔때기’가 종종 튀어나와 흐름을 깨는 것이 아쉽다. 특히 “한국은 아동친화적인 나라이며 서울은 아동친화적인 도시”라는 맥락없는 설명은 김치 먹다 생강덩어리 씹은 기분만큼이나 뜨악스러웠다.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 어른들이 그 난리를 쳤던 이 나라, 서울의 어디가 아동친화적이라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영부인 김윤옥 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던 ‘한식세계화추진단’ 사업을 물려받은 한식재단과 몇몇 공공기관이 제작지원했단다. 물론 청와대 모처에서 한식 홍보책자에 대통령 부부의 홍보 사진이나 “영부인께서 혼·분식을 장려하셨다” 따위 문구를 집어넣으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설로 떠들썩한 요즘, <김치 크로니클>은 한식 세계화 예산을 보기 드물게 효과적으로 집행한 예로 기록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