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곳곳에 매설되어 있는 강력한 웃음폭탄들 <러브픽션>

삼류까지는 아닌 것 같고 2.5류쯤 되어 보이는 소설가 구주월(하정우)은 출판사 사장인 선배의 일을 돕기 위해 베를린에 갔다가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이희진(공효진), 영화 수입사 직원이라는데 보는 순간 구주월의 마음에는 바람이 분다. 어딘가 좀 서투르고 고집 세지만 때로는 낭만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고전주의자 구주월과 알래스카 출신의 예쁘고 상냥하며 모던한 여인 이희진의 연애는 구주월의 노력과 전략으로 이내 성사된다. 처음에는 꿈결 같은 연애의 나날들이지만 현실은 물러서지 않고 또다시 찾아온다. 그것도 참 구질구질하게 찾아와서는 문제를 점점 더 크게 만든다. 구주월은 우연히 이희진의 과거사를 들은 날부터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러브픽션>은 <삼거리 극장> <뭘 또 그렇게까지>를 연출했던 전계수 감독의 로맨틱코미디다. 두편의 전작 모두 일정한 장르적 쾌활함과 소소한 영화사적 지식 그리고 감독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기질적 낭만성이 어우러져 색다른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한국 선배 감독들이 만들었던 로맨틱코미디에 불만이 좀 있었고 <러브 어페어>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가 이 장르의 최고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감독답게 이번에는 로맨틱코미디의 일반적 규칙을 지키면서도 재기 넘치는 대사와 상황들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섣부르게 감동으로 몰고 가려는 잘못도 범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반부는 웃음으로, 중반 이후는 감동의 도가니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그 많은 한국의 로맨틱코미디들과 비교한다면 단연 신선한 면이 있다.

다만 이 영화의 구조가 비교적 나열식이라는 점에서 누수가 생긴 것 같다. 아마도 전통적 드라마투르기에 대한 은근한 반감에서 비롯되었을 이 구성은 대체로 하나의 신마다 연애에 관한 문답 하나씩은 포괄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우리는 연애 상대방의 마음은 어떻게 사로잡아야 하는가, 남자는 얼마나 우매한가, 여자는 얼마나 알기 어려운가 등의 연애 기술서 목차에 나올 법한 나름의 소제목을 신마다 달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각각의 일화들 사이에 형성되었어야 할 긴장감의 장력이 덜 느껴진다는 데 있다. <러브픽션>에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그건 서사의 기승전결이 아니라 평평한 신들 사이를 밀고 당기는 강한 리듬감이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곳곳에 매설되어 흥을 돋우는 대형 웃음폭탄들은 아주 강력하다. 역대 한국영화 중 가장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체모 노출 신’, 그러니까 섹스를 하기 위해 상의를 벗어던지자 예고없이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겨드랑이털과 그걸 발견하고는 예의를 차릴 새도 없이 찰나의 호들갑을 떨며 내뱉는 남자주인공의 대사, “아이구! 이게 뭐야?”는 강력한 <러브픽션>식 웃음코드를 예상하는 데 결정적인 키워드가 되는 장면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