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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사실 너머의 그 무엇
장영엽 2012-03-15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

쿠스 반 쿠오렌, <아잇제와 피사넬로>(Ietje en Pisanello), 2003, oil on panel, 60 x 121cm

장소: 서울대학교 미술관 기간: 4월12일까지 문의: 02-880-9508

만나지 못할 두 여자가 만났다. ‘똥머리’에 단색 티셔츠를 입은 왼쪽 여자는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현대 유럽 여성이고,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고전 복식의 오른쪽 여자는 르네상스 시대 페라레를 지배했던 고고한 이탈리아 공주다. 작품의 제목은 <아잇제와 피사넬로>. 자신의 딸 아잇제와 르네상스 화가 피사넬로의 초상화 주인공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네덜란드 화가 쿠스 반 쿠오렌의 그림이다.

<아잇제와 피사넬로>는 이 그림이 소개될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네덜란드 전역에 유행했던 미술운동 ‘마술적 사실주의’의 흐름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과거의 유산이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사한다. 전시된 작품을 눈으로 훑기만 해도 생각나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이름이 수두룩할 정도다. 빛을 사려깊게 사용하고, 손으로 쓸어내리면 감촉이 느껴질 듯 인물의 살결을 보드랍게 표현한 초상화들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사실적인 그림체에 환상적인 정서를 입힌 풍경화들에선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영향이 느껴진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개념은 1925년 독일의 미술평론가 프란츠 로에 의해 생겨났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을 오브제로 삼되, 일반적으로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요소나 사물을 병치해 사실 너머의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화풍을 일컫는 말이다. 네덜란드 북부의 풍경을 다루되 극도의 적막감과 어두운 하늘빛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거나(요한 아벨링), 인물의 특징적인 인상을 강조해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정서를 창조하려는 시도(테오 르헤르미네즈)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마술적 사실주의에 속하는 작품들은 사실적인 화풍 속에 환상과 마술의 세계를 실마리처럼 담아둔다. 그 실마리를 찾으려 그림을 주의깊게 보는 과정에서 서스펜스와 쾌감이 느껴진다. 마치 잘 짜여진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다.

한국-네덜란드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네덜란드 ING 은행 컬렉션 71점이 소개된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1세대 작가 카렐 윌링크, 라울 힌케스, 윔 슈마허의 작품부터 최근까지 왕성하게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 필립 애커만의 작품까지 20세기 전반, 21세기 초에 걸친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