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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선의의 대가는 개죽음뿐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 A Lonely Place to Die(2001)

감독 줄리언 길베이 상영시간 99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자막 영어 출시사 칼레이도스코프 홈엔터테인먼트 화질 ★★★★ / 음질 ★★★★☆ / 부록 ★★☆

장르영화의 미덕은 적게 투자하고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영화 배경과 이야기 구조에 골머리를 싸매고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공을 들여야 한다.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는 그 부분에서 모범적인 사례다. 400만달러의 저예산임에도 비주얼이 좋고 이야기는 매력적이며 스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찝찝한 결말까지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영화의 무대는 산속이다. 등산을 즐기는 다섯 멤버들이 인적이 드문 숲에서 휴식을 취하다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다. 소리의 위치를 찾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땅속에 박힌 파이프를 타고 소리가 들린 것이다. 흙을 파내자 구덩이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겁에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는 며칠간 땅속에 묻힌 채 물 한통만으로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아이를 땅에 파묻은 것일까? 강렬한 호기심과 함께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는 영국에서 만든 저예산 장르영화다. 최근 몇년 동안 근사하게 만들어진 장르영화들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호주 태생들이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거나, 폐쇄공간으로 최소한의 인물들을 밀어넣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누가 돈을 적게 들였는지 경쟁할 정도로 저예산들이다. 대부분 자국시장의 관객을 소화하면서 제작비가 치솟는 한국영화계가 연구할 만한 대목이다.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는 대부분의 배경이 산속이다. 암벽을 타는 것 외엔 경치 좋은 숲속을 열심히 걷고 뛰어다니는 것밖에는 없다. 놀라운 것은 제작규모 대비 효과적인 화면의 때깔이다. 웅장한 산 풍경을 배경으로 암벽을 타는 것만으로도 웬만큼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등산 과정은 실제 있을 법한 상황만을 연출해 긴장감이 탁월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촬영이 빛을 발한다. 물속에서 암벽으로, 숲을 종횡무진 누비는 카메라의 시야는 굉장한 속도감과 박력을 부여한다. 별안간 일어나는 사건 또한 웬만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을 뇌세포를 깨운다.

문제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구조를 한 순간부터 목숨을 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사실 여자아이가 땅속에 파묻힌 이유는 싱거울 정도로 심심하다. 전반부는 걸작에 가까운 완성도와 흥미, 스릴로 충만한데 중반 이후론 평범한 장르영화로서만 기능한다. 그럼에도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는 잘 만든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에 녹아 있는 찝찝함과 불편함이다. 액션은 시원스럽다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물에 대한 답답함도 함께한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선택이 때때로 감당할 수 없는 후유증을 몰고 온다. 다섯 멤버가 어린 소녀를 구덩이에서 끄집어낸 대가는 동료들의 개죽음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사냥감처럼 총에 맞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런 상황에서 여주인공은 어린 소녀를 외면할 수 있냐고 하는데, 그녀의 선택은 올바르지만 죽은 동료들만 억울할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선의의 행동으로 도리어 큰 피해를 보는 냉정한 현실을 보고 배운다. <어 론리 플레이스 다이>는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취향에 관계없이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이지만, 누군가는 희생자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속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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